어쩌다, 취미가 인터뷰?

'취미가 인터뷰' 들어가는 글

by 노창범

인터뷰로 주고받는 것들


비 오는 밤을 맞아 내일 있을 인터뷰의 질문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이에게 보냈던 섭외 메시지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소속된 매체도 없고 기자도 아닙니다만, 이왕 만나는 거 제 질문과 당신의 답에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인터뷰' 한 번 하는 게 어때요?'


매체의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니라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어로서 제가 인터뷰이에게 드릴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지금의 생각들을, 어쩌면 살아온 삶을 한 번쯤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인터뷰를 '당해' 보셨나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그동안 흩어져있던 생각과 기억들의 맥락이 신기하게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하나의 '글'로 남게 되죠.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인터뷰이가 가진 지식, 그리고 그의 삶을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궁금한 걸 묻기 위해 만나는 거니까 질문과 답을 통해 제가 갖지 못했던 인터뷰이의 지식과 경험들을 얻게 됩니다.

때때로 인터뷰이가 떠낸 단어들이 기승전결을 이뤄 가슴을 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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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들


최근에 전 제 취미를 '인터뷰'라 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건 제게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 첫 직장은 잡지사였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기자가 하는 작업 중 단연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첫 인터뷰는 잡지사에 입사하고도 1년 반이 지나서야 시작됐습니다.

입사할 때 회사가 저에게 맡긴 업무의 60%는 홈페이지 관리였습니다. 때문에 그 귀한(?) 지면에 제 이름을 건 코너가 실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용기가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interview)'의 어원은 라틴어 'inter(사이에)'와 'videre(보다)'의 결합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한다'는 의미.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 이 내용을 기사화시키는 이 과정이 소심한 20대의 저에게는 그렇게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참 많은 일이 있었죠...) 끝에 일단 시작하고 나니, 인터뷰는 제게 가장 기대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터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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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인터뷰이는 일본 분이었습니다.

당시 전 연극 분야를 담당을 하고 있었는데 즐겨 찾는 한 극단의 매표소에 언젠가부터 어색한 한국어로 표를 판매하고 있는 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 이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문화계에서도 가장 구석진(그런 취급을 받는) 연극계에 외국인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첫 인터뷰는 가장 궁금한 사람과 하라는 선배의 충고 덕분에 그녀를 인터뷰했고, 한국과 일본의 연극 교류에 대한 꽤 흥미롭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얻었습니다.


2. 국내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전거 공장의, 사장님의, 동생을 인터뷰했습니다.

자전거 특집을 위해 수소문 끝에 찾은 공장이었는데, 사장님은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하셨습니다. 결국 허락해 주셨지만 동생분이 대신 나오셨죠. 취재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동생분이 돈봉투를 내미셨습니다. 지역지 기자들이 인터뷰 명목으로 이 봉투를 받으러 온다는 거였어요. 사장님이 인터뷰를 거부했던 이유였죠. 봉투를 돌려드리고 돌아오며 '기자란 뭘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원로 곤충학자를 인터뷰했습니다.

함평 나비축제가 화제가 됐을 때 축제의 성공 뒤에 그분이 있다는 걸 알고 섭외를 했습니다. 연로하신 분이라 인터뷰를 오래 이어갈 수 없어 두 번이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갈 때는 커다란 수박 한 통을 사 들고 끙끙대며 언덕길을 오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녹취를 풀어보니 나비에 대한 얘기는 30%, 나머지는 6.25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잡지에는 실리지 않았던 70%의 이야기가 그분이 정말 남기고 싶은 이야기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좋아하는 여배우를 인터뷰했습니다.

TV와 무대를 오가며 한참 인기를 얻던 분이었는데 좀 넉넉한 몸매는 그녀의 캐릭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의 목표를 물었을 때 살을 빼서 멜로물 주연 한 번 맡고 싶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두어 달이 지나 그녀가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멜로물의 주연을 포기한 걸까요? 아니면 공연이 끝나고 함께한 배우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는 행복을 택한 걸까요? 뭐,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5. 얼짱 출신 여배우를 인터뷰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물었을 때 그녀는 새벽이라 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그 시간, 그녀는 혼자 산책을 하고 거기서 얻는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꼭 책을 내고 음반을 내고 재킷 이미지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죠.

제 블로그에 그녀의 이런 얘기를 올렸을 때 끝없이 '네 주제에...'로 시작되는 악플이 무수히 달렸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안티팬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자신이 말한 모든 것들을 해냅니다.




나 인터뷰당한 거야?


잡지사를 그만두고 들어간 회사는 이름 있는 디자인 에이전시의 디지털사업부였습니다. 종이 위에서 놀던 아날로그형 인간이 웹에이전시라니. 고생길이 훤했겠죠?

회의에선 퍼블리셔, 개발자들이 암호 같은 전문용어를 쏟아냈습니다. 어쩌면 제가 주눅들길 바라며 평소보다 더 난이도를 높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이직한 만큼 의욕이 넘쳤던 전 모르면 열심히 질문을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맥락을 완성하기 위해 적확한 질문을 하는 것,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저한테 하나의 태도가 되었었나 봅니다. 모르는 걸 숨겼다가 더 큰 일을 치르는 상황들을 많이 봐오기도 했구요.


어느 날 개발팀에서 이런 얘기가 오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노과장하고 회의하면 인터뷰당하는 것 같아."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질문을 즐겨하는 사람이구나.




AI에게 물을수록, 사람이 그리워졌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젠 여러분에게 묻고 싶어요. 여러분은 하루에 몇 개의 질문을 하고 있나요?

저는 아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대상이 바뀌었죠. 사람이 아닌 AI에게 말입니다.


본격적으로 AI를 업무와 창작에 사용한 지 1년이 채 안 됐는데, 어느새 AI를 활용하는 시간이 무척 늘었습니다. 그런 만큼 프롬프트라는 형태로 AI에게 질문이나 요청을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었겠죠.


하루에도 수십 번씩 ChatGPT와 Claude에게 묻습니다.

"이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고쳐줘"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 그 이유는?"


결국 그 질문들은 'AI를 이용해 웹소설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한 권의 책'이라는 결과물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와의 대화는 뭔가 허전합니다. AI는 깔끔한 답변을 주지만, 망설임(더듬기는 합니다)도 없고, 예상 밖의 반응도 없고, 놀라움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인생 스토리'가 없죠. 먼저 말을 걸지도 않습니다.


전 다시 사람에게 묻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책을 내고 그걸 핑계로 7월 한 달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회사 일, 그리고 집필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일상 중 깨어있는 시간을 양분하고 있던 몇 달간, 전 사람과의 대화가 꽤 고팠었나 봅니다. 이렇게 사람과의 대화가 즐겁다니. 무엇보다 따끈따끈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주는 느낌은... 서로 각자의 악기를 들고 재즈 합주를 진행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 책 얘기나 상대방의 근황 얘기도 많이 나누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AI 메타인지'라고 할까요? 사람들이 '얼마큼 AI를 활용하고 있고, 또 A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공통된 질문이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인터뷰


앞으로도 AI는 제 일과 생활에서 점점 활용도가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만큼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태생적으로 아날로그형 질문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취미가 인터뷰!'란 선언을 했습니다.

사람을 만날 명분이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만남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는 제 각오기도 합니다. 지속적으로 AI가 사람의 일과 생활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제 나름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마침 'The AI Collective'라는 커뮤니티를 만났습니다. AI라는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속한 커뮤니티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25개 이상의 도시에 7만 명이 속해 있고, 한국에도 서울 챕터가 생겼습니다.


첫 모임에 참석했을 때 느꼈습니다. '아, 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

모두가 'AI 시대'라는 같은 파도 위에 있지만, 각자 다른 보드를 타고 있었죠. 그래서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간단히 인터뷰를 하는 게 제 취미로서의 인터뷰에 주된 소재가 될 것 같아요.


이 커뮤니티에 속한 분이 아니더라도 제 호기심을 강하게 잡아 끄는 분이 있다면 인터뷰를 청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브런치 작가분들 중에 인터뷰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다음 편부터 시작됩니다. 제 취미 생활의 기록이.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