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을 넘어 돌아오니, 가족과 AI가 있었다

AI Collective@서울 커뮤니티 멤버 인터뷰 (1): 임은영 님

by 노창범

임은영 님은 '모두의 AI'를 모토로 하는 'AI Collective 커뮤니티'의 온보딩 동기입니다.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위한 참석한 웨비나의 사등분된 모니터, 그 한 블록을 차지한 50대 여성인 그녀를 보며 얼마 전 만났던 그분 또래의 여성 임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AI를 배우지 않아도 '직원들이 열심히 사용해 조직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고, 자신은 은퇴도 얼마 안 남았으니 굳이 AI를 열심히 익힐 필요가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AI를 익숙하게 활용한다는 건, 그녀들이 젊은 시절에 힘겹게 거쳐왔던 무수한 기술의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학습과 시행착오의 울퉁불퉁한 터널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거든요.

이제 그녀들은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삶에서 마주하는 AI와의 만남을 즐기는 정도로 이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은영 님은 AI를 탐구하기 위해 AI Collective 커뮤니티에 참여하셨습니다.

제 호기심은 그 지점을 향했습니다.


‘왜 그녀는 내가 아는 또래 여성 기업인들과 달리 굳이, AI를 깊이 알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나게 됐을까?’


그래서 저는 임은영 님에게 인터뷰를 청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을 했습니다.



9월 11일, 그녀의 아지트인 신논현역 근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제는 에어컨 빵빵한 실내 대신 야외 베란다를 선택해도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초가을 오전이었습니다.



1. 죽음에서 돌아온 날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하얀 천장과 나를 둘러싼 온갖 기계들이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임은영 님의 링크드인 글 중)


2018년 1월, 임은영 님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마치고 10시가 넘어 퇴근한 후, 다시 회사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5년간, 긴 재활의 터널이 시작됐습니다.


"뇌 속이 다섯 곳이나 터져서, 머리를 열어 수술도 못하는 상태였어요. 그렇게 저는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몰두하던 업무에서 강제 은퇴를 당했죠."


그녀는 재활 중 처음으로 걸을 수 있게 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처음으로 걷게 된 날을 기억해요. 재활 선생님의 '거울 보세요. 드디어 걸었어요'라는 말에 무심코 본 재활치료실의 벽면 거울에는 낯선 내가 서있었어요. 환자복에 짧게 자른 머리, 봉을 붙잡고도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자세, 그리고 끌리는 다리..."


더 먼 과거를 돌아보며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밤샘하려고 저녁밥 대신 커피를 마셨어요. 주말에는 대학원도 다니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때 한의사인 지인분의 '너 그렇게 살다가 큰일 난다'는 말씀에 저는 ‘내일 죽어도 괜찮아요. 하루도 후회되는 날이 없거든요'라고 멋지게 말한 적이 있어요. 아프고 나니 '그런 망발을 지껄인 대가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나는 죽음에서 돌아왔다. 빛나는 자신감도, 넘치는 에너지도, 스마트하던 머리도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뚱이만 가지고 돌아왔다.’
(임은영 님의 링크드인 글 중)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2. 아들들이 만든 새로운 회사


23살에 창업해 평생 일만 해온 그녀가 쓰러지자, 고3이던 첫째 아들이 졸업과 동시에 회사 경영에 뛰어들었습니다. 둘째도 1년 뒤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국악고등학교를 나와 평생 국악만 하며 살 줄 알았던 두 아들들이었습니다.


"그 애들이 봤을 때는 엄마가 하던 일의 방식이 너무 아날로그였어요. 전 진짜 전국을 제주도 끝에서 파주 끝까지 뛰어다니면서 일을 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맡길 곳이 없어 사무실에서 함께 자란 아들들은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나름대로 일의 경험을 쌓고 있었습니다.


"의외로 능숙하게 일을 하는 애들한테 '왜 나는 너를 사무실에 와서 놀아라 한 기억밖에 없지?' 이러니까 '엄마가 소위 (사무실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일만 한) 가해자라서.’라고 해요."


아들들은 유치원 때부터 택시 광고의 커팅 글자를 따고, 초등학교 때는 PPT로 보고서를 만들고, 중고등학교 때는 포토샵으로 디자인까지 해봤다고 합니다. 정작 임은영 님 자신에게 그런 기억은 없지만.


"자기가 유치원 때부터 커팅 글자 따는 사람이래. 그게 내가 너무 웃겼어요."


큰아들은 2년간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일의 방식을 직접 경험한 후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를 완전히 정리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각각 새로운 회사를 차렸습니다.


"큰 애는 청년예술인 지원과 신문 파트를, 작은 애는 광고 쪽 회사를 세웠어요. 제가 택시·버스 광고를 주로 했다면, 아들은 전광판 광고로 넘어왔죠."


아들들은 시대의 변화를 엄마의 일에 반영했습니다.


"애들은 가업을 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새로 했다'라고 말하죠."


흥미로운 것은 첫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년도 안 되어 시작한 청년예술인 지원 사업입니다.


"자기가 겪어보니까 지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국악고를 졸업한 형님들이 서울대, 한예종을 나와서도 생계 때문에 포기하는 걸 보면서... 그 길을 쭉 가서 40대를 넘어서면 견딜 수 있거든요. 근데 그 중간에 험난한 경제적 골짜기가 있는 거예요."



3.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복귀


2023년, 재활을 통해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그녀에게 첫째 아들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하루에 1시간씩만 우리 회사로 출근하세요."


아들은 점진적으로 2시간, 4시간, 한나절로 늘려가며 그녀에게 회사 복귀를 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5년 만에 돌아온 회사는 그녀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딴 세상이었어요. 일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인데 일을 진행하는 형식은 죄다 달라진 거죠. 사내에서도 일을 하는 프로세스가 구글 기반으로 다 바뀌어서 서류 출력하는 것도 없고, 결국 다 다시 배워야 했어요."


그녀는 그때의 충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갑자기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것 같았어요.”


어머니를 이 시대에 적응시키는 아들의 교육 방식은 혹독했습니다.


"얘는 대신해 주는 법이 없어요. 가르쳐주는 것까지만 해요. 자기가 하면 30분 할 걸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있어도 안 해줘요."


그렇게 한 달간의 격한 적응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를 진짜 한 달 정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말이 필요가 없었어요. 딱 한 달 하고 나서 내가 그 애 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도포 벗어던지고 새 옷 갈아입는 느낌이었죠."


결국 ‘나 환갑에도 취직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4. ChatGPT와 함께한 특별한 교육


2023년, ChatGPT가 등장하자 아들은 또 다른 과제를 내줍니다.


"ChatGPT를 활용해 홍보 기사를 써보세요."


"처음에는 그게 그냥 저한테 내는 숙제인 줄 알았더니 그걸 가지고 자기는 돈벌이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들은 ChatGPT를 활용하는 홍보로 국회의원 선거 온라인 홍보 계약을 두 건이나 따냈습니다.


첫째는 종종 엄마가 ChatGPT에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결과가 나오는 화면을 관찰했습니다.


"같은 목적을 위해 프롬프트를 작성하더라도 자기가 입력하는 거하고 제가 입력하는 건 다르잖아요. 아들은 제가 ChatGPT한테 뭐라고 질문하는지를 걔가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이 질문은 좋았어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주면서."


그리고 아들은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자기도 활용의 범위를 넓혀간다고. 제 경험을 자기의 간접 경험으로 만들고 있었던 거죠."


첫째는 현재 군대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말마다 새로운 과제를 내줍니다. 이런 식으로요.


"제미나이로 영상을 하루 세 편 만들어서 올리세요. 판소리를 넣어서."



5. 학습 동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


AI 학습에 이렇게 열심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의외로 솔직한 답변을 합니다.


“아들한테 잘난 척하려고 하는 거예요. '나 이런 것도 해'라고 목에 힘주고 싶어서. 그 이유가 50% 이상이에요."


그녀의 학습 전략은 ‘서당개 3년’입니다.


"저는 항상 하는 게 서당개 3년이에요. 잘하는 사람 옆에 붙어 있어요. 분위기로라도 뭔가 배울 수 있거든요. 시간이 가고 나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AI를 배우는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안타깝게도 아들들에게 잘난 척은 잘 통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들들한테 ‘너흰 이거 모르지?’라고 해봤자 아무런 타격이 없어요. 이미 알고 있거나 몰라도 금세 익히거든요. 결국 그냥 소심하게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그 정도 자랑을 하는 거죠."



6. 불안에서 효능감으로


몸이 좋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불안장애’였습니다.


"다시 내가 뭔가 효용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되기 힘들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땐 불안장애가 왔던 것 같아요."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전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저녁에도 잠이 올까 봐 저녁밥 대신 커피로 해결하고 주말에는 대학원 가고 그렇게 살았는데..."


회복 후 들은 의사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이 '어떤 후유증이 와도 어색하지 않다'였어요.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시작된 아들의 출근 제안은 단순한 업무 복귀가 아니라 나름의 치료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불안감이 가지고 있단 걸 아들도 알았던 것 같아요. 그걸 치료하려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었던 거죠.."


아들은 2023년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사회로 이끌어냈습니다.


"2023년도부터 자꾸 여행을 보냈어요. 그리고 '가신 김에 전에 일할 때 알던 분 있으면 만나고 오세요.' 이런 얘기를 했죠. 사실 아픈 뒤로 연락처도 바꿔서 전에 알던 사람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거든요. 주위에서는 제가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대요."



7. 오아시스의 물줄기가 되다


현재 그녀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청년예술인 지원 사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광고 등의 계약 금액 10%를 떼어 공연을 만들고, 참여하는 예술인들에게 페이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형태(공연과 콘텐츠 제작, 마케팅 교육, 공연 관람과 여행, 생활 제품, 일상의 경험 등)로 청년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강진군 문화재단에 관절 제품을 보냈을 때, 처음으로 감사 영상을 받았던 순간을 회상합니다.


"첫째의 모토는 '대가가 있으면 지원이 아니다'예요. 그래서 저희는 지원하고 나서 그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지 않아요. 근데 거기서 '임은영 이사님 감사합니다.'하고 영상을 찍어 보낸 거예요."


그 순간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 내용인 줄 모르고 사무실에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었는데 그런 영상이 나오니 직원들이 다들 빵 터져서 웃고 난리가 났어요. 좀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밤에 집에 가서 또 틀어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영상 덕분에 아버지가 월급봉투를 갖고 와서 엄마에게 줄 때의 그 느낌을 알게 됐어요.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거, 그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그녀는 자신을 ‘오아시스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아시스에 작은 물줄기를 내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정의합니다.


"나보다 훨씬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요. 뭐 그럼 난 그 오아시스마다 필요한 물줄기 하나 정도는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원 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예술인들을 기획자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공연을 준비할 땐 예술인을 카톡방에 참여시켜 기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게 해요. 그들도 그렇게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는 거죠."


이런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서로 나누는 건 정말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8. 100세까지 현역


‘100세까지 현역’이 그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AI 학습도, 다양한 교육과정이나 커뮤니티 참여도 모두 이 목표를 향한 과정입니다.


"제가 어릴 땐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많이 다녔거든요. 갈 때마다 새 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어요. 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곳의 인싸를 잡아 그 옆에 붙어 있어야 적응할 수 있었어요. 지금의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예요."


AI Collective@서울 커뮤니티에 참여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AI라는 세계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 커뮤니티는 한정 짓지 않고 그 새로운 세상을 살펴볼 수 있는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새로운 학교에서 인싸와 함께하는 것처럼요."



에필로그: 가족이 하나의 두뇌가 되다


"우리 가족을 말하자면 ‘하나의 두뇌’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아요. 교육을 다녀오면 서로 브리핑하고,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며, 각자의 경험을 가족의 자산으로 만드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군대에 있는 아들이 주말마다 업무 지시를 내리고, 학습을 청하며 어머니는 그것을 수행하고 공유하며 성장하는 이 특별한 관계는 어쩌면 AI 시대의 새로운 가족 협업 모델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한 여성이 AI 시대에 새로운 삶을 설계해 가는 이야기. 그것은 위기가 어떻게 기회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입니다.


"저는 사실 억지로 사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아프고 누워 있으면서 보니까... 하나님이 날 엄청 사랑하시는구나. 나를 눕혀놓고 모든 걸 다 걷어간 상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게 됐어요."


임은영 님의 재탄생 스토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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