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독수리 4인방

서울, 夢. 19화

by 노창범

힘겨운 프로젝트를 마치고 파견에서 돌아왔더니 내가 담당한 팀이 사라져 있었다.

파견지에서 몇 명의 팀원들이 떠났고, 파견 나간 사이 기획 1팀장은 남아있던 팀원들을 자기 팀에 흡수한 뒤, 나를 실무가 아닌 제안 전담으로 밀어내 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격한 사내 정치였다.


그리고, 그 무렵 난 이 꿈을 꾸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침팬지' 꿈을 꾸기 두 달 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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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8일]


꿈속에서 '우리'는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다.


우리, 즉 나와 세 명의 팀원은 낡은 강의실에 모여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캠퍼스는 고요했다.


"이제 갈 시간이야."


내가 말했다. 동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칠판 모서리에 적힌 '기록실'이라는 희미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준비됐어?"


박 과장... 아니, 박 과장의 얼굴을 한 학생이 물었다.


"응."


우리는 강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흰 날개가 돋아나며 독수리가 되었다.



연대독수리1.png
연대독수리2.png



넷은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우리는 연세대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되어. 서울의 밤하늘 어딘가에서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따뜻한 바람이 깃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자유로웠다.


"저기야."


누군가 멀리 건물을 가리켰다. 우리가 가야 할 곳. 거대한 정부청사 같은 건물.

우리는 그 건물의 옥상에 내려앉았다. 착지하는 순간 다시 사람이 됐다.

같은 흰색 옷을 입고 있던 우리는 독수리 모양의 흰색 가면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복도. 형광등 몇 개만 깜빡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뛰어!"


우리는 달렸다.

뒤에선 무전기의 지지직거리는, 그리고 금속 구두굽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머리 위 형광등 한 칸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3층에서 한 명이 넘어졌다. 그가 손을 저었다.


"먼저 가!"


나는 망설였지만 나머지 둘이 나를 끌었다. 우리는 계속 뛰었다.

5층에서 또 한 명이 멈췄다.


"더는 못 가겠어."


그는 옆 복도로 사라졌고 추격자 몇 명이 그를 따라갔다.

7층에서 마지막 한 명이 뒤로 돌아섰다.


"혼자 가."

"안 돼!"


그는 이미 계단 아래로 펄쩍 뛰어내렸다.

비상구 표지판이 있어야 할 곳엔 3, 5, 7이라는 숫자가 물이 번지듯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시 마주한 어두운 하늘. 별빛마저 없었다.

나는 난간 끝에 섰다. 뛰어내리면 다시 독수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에서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나보다 키가 컸고, 원숙한 느낌을 풍겼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낮고 위압적으로 말했다.


"가면, 지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다가와 내 가면에 손을 뻗었다.

강제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언뜻 가면의 뒷면에서 익숙한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연대독수리3.png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



나는 사무실에 서 있었다.


아침 해가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빈 책상들. 아무도 없는 사무실.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기획 1팀장이었다.


"게임은 끝났어."


그가 말했다.


"... 그들은 한 명씩 체포되었고..."


불현듯 귓가에 내레이션이 흘러들어왔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잠에서 깼을 때 곁에서 아내가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서사에 귀를 기울였다.


"... 리더만 남았을 때, 그는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 역사는 항상 반복됩니다..."


나는 눈을 뜨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꿨어."

"그럼 결국 떨어졌겠네. 키 크려고?"


그 조그마한 농담에 긴장이 풀렸고,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이 되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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