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BOUT SPU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동원 Nov 29. 2019

내가 토트넘을 좋아하게 된 이유

체구는 작지만 큰 영향력을 가졌던 선수들

런던 북동쪽에 위치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있을 때 관중석에서 태극기가 보이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다. 선수로 시작하여 팀을 알아가고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 또한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보기 위해 떠난 유럽여행에서 북쪽 스탠드를 뜯어낸 상태였던 화이트 하트 레인을 둘러봤을 때 팬심이 더 깊어졌다. 이번 글은 나를 토트넘에 빠지게 했던 몇몇의 외국인들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The Pitbull,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

이영표와 에드가 다비즈(사진 출처 :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


2005/06 시즌 토트넘으로 이적한 이영표 선수와 같은 왼쪽에서 뛰며 시선에 확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다. 특이한 고글을 쓰고 이영표 선수의 앞에서 어쩔 때는 뒤에서 나타났다. 에드가 다비즈(이하 다비즈)는 공을 소유하고 있어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무서운 선수였다. 공을 소유했을 때에는 상체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수비를 교란시켰고 가끔씩 미사일을 하나씩 꽂아 넣었다. 공이 없을 때에는 상대를 잡아먹을 듯 쫓아 태클과 몸싸움으로 공을 빼앗았다. 

다비즈는 중앙에서 신체능력을 활용한 활동량으로 상대 선수와 싸우고, 공을 되찾아오는 전투적인 미드필더였다. 2005년 이탈리아에서 넘어와 2007년 팀을 떠나기까지 오래 머물러 있던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주목받기 힘든 위치에서 작은 체구로 본인을 증명했으며 토트넘 팬들을 매료시켰다.(그는 2017년 5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경기에 레전드 자격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TMI : 다비즈는 2000년 왼쪽 눈에 녹내장이 발병하여 수술을 받고, FIFA에서 승인한 특수고글을 쓰고 선수생활을 했다. 고글은 지금도 그의 상징인데 몇 년 전, 일이 있었다. 2014년 다비즈가 리그 오브 레전드로 유명한 라이엇 게임즈를 초상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적이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속 한 챔피언 스킨이 그와 매우 유사했다는 것이다. 2017년 네덜란드 법원은 다비즈의 손을 들어줬고 해당 스킨에 대한 수익을 공개, 초상권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에 항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Mozart, 루카 모드리치 (Luka Modric)

루카 모드리치(사진 출처 :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


한 선수가 덩치 큰 선수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봤다. (경기장마다 카메라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경기장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기는 그라운드로부터 꽤 높은 수직적인 위치에서 촬영되었다.) 이 선수가 경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시야는 티비로 경기장 대부분을 보는 누구보다 넓었다. 퍼스트 터치를 자기 마음대로 길게 때로는 짧게 하여 상대 선수들의 역동작을 유도했고, 그의 패스는 내게 '때로는 슈팅보다 패스가 더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모드리치는 다비즈만큼 전투적인 미드필더는 아니었지만 천재적인 미드필더였다. 그의 약점인 왼발 사용은 오른발 아웃프런트 패스로 지워버렸다.(아웃프런트 패스를 함으로써 그에게는 다른 패서들과는 약간 다른 패스 길이 보이는 듯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가 토트넘에서 보여줬던 것들시야, 패스, 탈압박에 이은 드리블, 중앙에서의 플레이메이킹은 화이트 하트 레인이 본인에게 작은 어항이 되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현재 그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후 'Burn out'(번 아웃)이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며 그의 패스는 나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됐다. 런던에서 이적 후 6년간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여줬던 꾸준함과 천재성 그리고 크로아티아를 월드컵 결승에 올려놓았다는 점은 축구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E of the DESK, 크리스티안 에릭센(Christian Eriksen)

크리스티안 에릭센(사진 출처 : 토트넘 공식 트위터)


   위 선수들이 '내가 토트넘을 좋아하게 된 이유'의 과거였다면 이 선수는 현재이다. 모드리치가 감탄이었다면 에릭센은 영감을 준다. 

에릭센에게 부족한 것들은 미드필더로서 꽤 치명적이다. 탈압박 능력, 머리숱, 스피드. 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능력은 부족한 것들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창의성, 킥의 정확성, 침착성, 활동량 그리고 양발 사용능력. 손흥민 선수가 양발 슈팅의 질이 동일하다면 이 선수는 양발 패스가 그러하다. 가릴 것 없이 쭉 뻗어가는 긴 패스, 공을 소유하다가도 어느 위치에서든 어떤 발로든 창의적인 패스를 넣을 수 있다. 덴마크의 에이스는 한국과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이 골을 넣는 데 가장 좋은 어시스턴트였다. 가끔씩 터지는 Screamer(예상치 못한 곳에서 슈팅을 하여 나오는 골, 보통 박스 바깥에서 나오는 극적인 중, 장거리 골을 말하는 표현이다.)는 나에게 항상 지향점이 되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달라질 수 없다. 쌍둥이설을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제기하는 중이다. 에릭센 이름으로 2개의 져지를 구매한 나는 현재를 믿을 수 없다. 지난 결승전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이적을 요청했지만 이적시장에서 팀과 본인이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더 이상 팀에 헌신하지 않는 듯하다. 활동량은 여전히 좋지만 날카로운 패스와 시야는 증발됐다. 대신 윙크스와 함께 턴오버(공격권을 뺏기는 것) 팀 내 1위를 다투고 있다. 이 X새끼.

포체티노 감독 아래 젊고 역동적이었던 팀의 일원으로서 패스 시발점 역할을 정말 잘 해냈지만 팀의 한 사이클은 끝났다. 현재 팀은 다시 반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있고 이적 이슈를 떠나 나는 에릭센이 어찌 됐든 다시 한 축을 맡길 바란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면, 새로운 감독 아래에서 그가 보여줘 왔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자연스러운 안녕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Transf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