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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SFY Dec 17. 2022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2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2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아버지들의 육아 프로그램이 있다. 챙겨보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귀여워 몇 번 짧은 클립을 보곤 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줄여서 슈돌이라고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끝나고 광고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시청자들에게 끝날 것이라는 틈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끝난다고 해서 '싸가지 엔딩'이라고 불린다는 재미난 후기를 본 적이 있다.


네????


한마디로 말하자면 슈돌의 '싸가지 엔딩' 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놀랍진 않았다. 내가 1년 넘게 근무하며 썰려나간 직원들로만 이미 퇴사율 200%를 찍었기 때문에. 해고 사유는 다양했지만 획일화되어 있었다. 감히 고귀하신 임원진의 감각을 못 믿고 아이디어를 제시함이 가장 컸다.


임원들의 사람 뽑는 기준은 딱 하나였다. 고분고분하고 튀지 말 것. 자신들의 감각은 익히 뛰어나니 직원들의 뜻은 필요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의견을 내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미팅룸으로 불러 몰아붙였다. 마치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숨어 들어온 산업 스파이를 대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의견을 제시했다가 미팅룸 끌려가서 한 시간 동안 설교를 들은 경험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결정을 미루는 임원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지만 길게 나열하며 그의 마음에 들기만을 기다렸다. 참을 만했다. 전 회사에서 닳고 닳아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저항성이 강했던 것도 한몫했다. 의견을 내어 네가 뭔데 내 권위에 도전하느냐는 잘리는 것보다, 납작 엎드려 좋습니다, 좋아요 하다가 너는 왜 매번 좋다고만 하냐, 줏대도 없냐 소리 듣는 게 나았다. 아무튼 3개월 동안 함께 일 했던 그 수습 직원은 고작 전화 한 통으로 얼굴 보고 인사도 못한 채 잘렸다.


시간은 흘렀다. 나와 동료들은 짐을 챙기러 온다는 1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퇴근했고, 그동안 임원들에게서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부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루틴 업무와 함께 틈틈이 구인공고를 보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했다.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맛집에서 거하게 먹기도 했다. 자리로 돌아와서 화장실에서 이를 닦는데 순간 촉 같은 것이 내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아 우리 회사 망했구나.

하는 그 어떤 근거도, 확신도 없는 주관과 객관 그 사이에서.


사람의 촉은 살아온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한 살기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라고들 한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와 말했다. 회사 망한 것 같아요, 짐 챙깁시다. 물론 허무맹랑한 소리긴 했다. 일개 직원이 뭘 알겠는가,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이라고는 사람 잘라놓고 잠수 타듯 연락도 없는데.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함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짐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고 외장하드에 문서를 복사했다.


나는 내 촉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기억한다. 참으로 묘상한 기분이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돗자리를 깔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회사가 망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며 회사가 더 이상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자신은 무리하게 회사를 이끌 돈도, 의지도 없으니 사업을 접겠다고 말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막막함과 체념, 그리고 아주 작은 연민도 있었다. 나야 월급쟁이지만 대표님은 자신의 사업에 쏟아부은 것이 곱곱곱절은 많을 텐데.  후에는 짜증이 왈칵 났다. 아니 왜 울어? 울어야 하는 건 당장 다음 달부터 직업이 사라지는 나 아닌가? 우는 대표님 앞에서 딱히 할 말이 없어 휴지 가져오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뜨며 그의 감정의 고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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