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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SFY Jan 11. 2023

다니던 회사가 망했으면 해야 할 것

다니던 회사가 망했으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론 실업급여 신청이 가장 먼저다.

그리고 늦잠 자기.

마지막으로는 살기 위한… 재취업 준비.


나는 가장 먼저 늦잠을 잤다. 그리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셨다. 곁들이는 회사 욕은 최고의 안주거리였다. 안주가 달아도,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셔도 술은 썼다. 갑작스러운 퇴사에 모아둔 여유자금 없이 이직할 생각에 입 안이 꺼끌 했다. 하루아침 회사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니, 내가 한 모든 일들은 화려한 불꽃이 전소된 후 그 아래 남은 재처럼, 쓸모없고 하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뭘 했더라, 포트폴리오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낸다. 이럴 거면 한 줄이라도 더 남길 수 있게 다른 것도 해볼 걸, 모든 것이 아쉽고, 외로웠다.


한 달 유예기간 동안 일은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마지막날이 다가올수록 임원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날까지도.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라는 직원 2의 말에 대표는 기분이 안 좋으니 출근을 못할 것 같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쓸모도 없는 인수인계서 작성을 마치고, 직원들끼리 임원들 오래 사시라는 덕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느덧 퇴근시간이었다. 집에 가려고 짐을 싸고 있는데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연지사 대표님이었다.


"저번에 얼굴 본 것이 마지막이네요."


네가 회사에 안 나왔잖아.


"네 대표님. 네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하루에 8시간을 꼬박꼬박 봐 오며 함께 일 했는데 마지막 인사는 실체 없는 음성으로 끝나….


"아 그리고 전달 준 파일 내에서 업무 및 진행 리스트 폴더링 해둔 파일은 잘 확인했는데, 인수인계서는 안 주셨던데…."


지 않았다. 인수인계서를 써 본 적이 없는 대표는 왜 인수인계서는 안 주고 이상한 파일만 주냐고 끝까지 내 탓만 했다.


"네? 대표님, 그게 인수인계서인데요? 그렇게 작성해 달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러셨구나."

"제가 여유가 없어서요, 이직확인서 신고와 고용보험상실신고 빠르게 처리 부탁드립니다."

"네 바로 처리할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뒤로 나는 실업급여를 신청했고, 채용공고에 지원했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며칠 후 퇴직금이 들어왔다. 그렇게 깨끗하게 이별인 줄 알았다. 경력 증명서, 원천징수 영수증 등 퇴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실물로 받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사무실 출근하기 귀찮다며 팩스로 사본 보낼 테니 그거 먹고 떨어지라는 등 엄청나게 긴 메시지를 보낸 것을 제외하고. 더러 고용 노동청에 신고할까 고민까지 해야만 했던 지저분한 일들이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한다.


대한민국 건아로 태어나 대한민국식으로 내 프로필을 잠깐 읊자면 나는 학벌주의 사회에서 일찍이 밀려났다. 그것을 졸업 후, 남들처럼 남들 다 아는 대기업에 이력서 세 곳 정도 끼적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뒤로는 주로 중도 아닌 소기업에만 지원을 했었다. 당시, 자소서 첨삭에 면접 스터디를 하며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던 나의 친구들을 보며 중소에 무슨 면접 스터디까지 공들이냐 라는 매우 안일한 생각으로 호기롭게 실전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면접이라고는 살면서 알바 면접만 몇 번 본 것이 고작이라 수 없이 많은 흑역사를 남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별표를 쳐두었을 만큼 내 이력서를 주의 깊게 봤다는 면접관 앞에서 소심하게 네네네만 하다가 떨어진 일, 그리고 면접 모범 답변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내가 대답했던 배 째라 면접 답변들이 있다. 창피하지만 잠시 떠올려보자면 아래와 같다.


면접관: 지원하신 직무에서 잘할 수 있는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 회사 업무 프로세스를 잘 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 우리 회사는 이러이러한 업무를 합니다. 도움이 되셨나요?

나: 넵 PPT 작성을 잘할 것 같습니다.

면접관: 그리고요?

나: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탈락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소기업에, 신입 면접이어서 그런지 가족(부모님 형제자매 전부 다)의 직업, 다니는 회사, 어디 지역에 사니 취업에 별로 간절함이 없겠네, 주량은 얼마나 되니 등과 같은 거지 같은 질문도 많이 받아봤다. 특히나 부모님 직업은 왜 그렇게들 묻는지. 요즘에는 불법되어 과태료 문다고 하던데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나. 그 당시 나는 삶에 환멸을 느끼고는 아무리 규모가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면접에서 부모님 직업 물으면 입사 포기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니 그래도 모범 답안에 대한 공부도 하고, 요령이 생겼다. 오롯이 내게만 집중하는 면접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근로계약서 쓰면서 부모님 직업 묻더라…. 면접에서만 안 물었을 뿐. 아무튼 면접에서 대놓고 부모님 직업 안 묻는 회사를 골라 취업을 하긴 했다. 작았지만, 나름 보이는 포트폴리오는 나 빠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위치도 나쁘지 않았고, 미팅룸에 놓여있던 대형 화이트보드에 미처 지우지 못한 프로젝트 내용들이 어린 시절 나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그렇게 첫 회사를 골랐다.


아빠는 나를 말렸다. 규모가 너무 작은 곳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좀 더 고민해 보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호기롭게 첫 출근을 했다. 그때 아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무튼.


지금까지 대했던 어른이라고는 집 안의 부모님 둘 밖에 없이 자랐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었지만, 어른들과, 10년 이상 차이나는 선배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지내야 하는지 눈치랄 게 없어서 힘들었다. 거의 1년을 혼자 막내로 지냈는데,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구분 지어 알아서 제가 하겠습니다! 해야 했다. 안 하면 나중에 술자리에서 술기운을 빌어 욕 더럽게 먹었다. 그 상황에서는 꼰대처럼 보일까 봐 말 안 해주더라. 아무튼 욕 처먹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은 물어보지 않고 다 뺏어서 했다.


사실 본 일도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50대 50이었던 것 같다. 죽을 것처럼 하기 싫다가도, 천직인가 싶을 정도로 재밌을 때도 있었다. 잠 깨려고 탕비실에서 챙긴 오예스를 한 입 베어 물었다가 그대로 잠들었을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고 한계가 오니 날 선 반응들에 심적으로도 많이 고되었지만 프로젝트가 눈앞에 그려지고, 끝나는 그 순간만큼은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이 문제다.


그렇게 다니게 된 첫 번째 회사의 대표는, 자신이 퇴근 전에 직원들이 퇴근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그렇다고 이게 한, 두 시간 오버하는 정도도 아니었다. 새벽 1, 2시가 되어도 뭐라고 했다. 회식은 매주 있었고, 강제로 술 먹이고, 성희롱하고,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다.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당연지사. 사무실 내에서 담배도 피웠고 고객사들은 나를 무시하며 지 비서처럼 부렸는데 상사라는 사람들은 이에 도와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월급은 최저시급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2~3시에 퇴근하는데도. 이럴 거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하고 말지. 게다가 내 밑으로 들어온 후배들의 연봉이 나보다 많았다. 나는 점점 미쳐갔다. 친구들은 나한테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서웠다. 고작 1년의 경력으로 이 나이의 이 스펙인 날 써줄 곳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근거 없는 불안 속에서 해보지도 않은 채 사구 안에서 허우적대며 곪아 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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