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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운드 Mar 02. 2019

살아내는 세상의 절망과 희망

                        가버나움 Capernaum. 2018

헐렁하고 더러운 하얀 삼각팬티를 입고 삐딱하게 서 있는 소년이 보인다. 얼굴과 몸은 지저분하고 표정은 당돌하다. 어린 나이이지만 인생은 다 살아버렸다는 그 표정은 일반적인 그 또래 아이의 태도가 아니다. 

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촌의 한 소년, 자인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말한다. 어린 자인과 아기 요나스의 생존 이야기의 끝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현재의 법정으로 돌아오고 그 결말은 경이롭다. 영화 <가버나움>은 2018 칸느 영화제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칸느 영화제 상영후에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이유는 영화의 결말을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자인은 나이를 알 수 없다. 감옥에 가게 되어서야 비로소 의사가 자인의 치아를 검사해보고 12살 쯤으로 나이를 추정한다. 자인은 자신의 부모를 법정에 고소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한 죄 때문이다. 자인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좁은 집에서 부모 그리고 여러명의 어린 동생들과 살면서 무거운 짐들을 나르고 슈퍼의 잡일을 도와주고 가족과 함께 마약물을 감옥 재소자의 세탁물에 적셔서 말리어 다시 재소자에게 가져다 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인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책가방을 매단 버스 옆에서 마르고 작은 어린 몸에 생활고의 무거움을 지니고 있다. 유일하게 순수한 기쁨은 바로 아래 여동생인 사하르와의 관계이다.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하자 자인은 자신의 셔츠로 초경 대처법을 알려주며 부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자인은 슈퍼 남자가 사하르를 탐내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그러나 자인의 부모는 10살이 조금 넘었을 사하르를 슈퍼 남자에게 시집 보낸다. 

부모에게 분노한 자인은 집을 무작정 나가지만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다. 버스 안에서 만나게 된 바퀴벌레가 그려졌지만 얼핏 보면 스파이더맨 복장의 할아버지를 따라 내린 곳은 가족들이 즐겁게 찾는 놀이동산이다. 그곳에서 배회하던 자인은 놀이동산의 식당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나고 라힐의 집에서 라힐의 어린 아들 요나스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며 라힐의 가족이 된다. 모성이 가득한 라힐의 집에서 잠시 따뜻한 밥을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인 라힐은 브로커에게 신분증을 사기 위해 나갔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고 자인과 요나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라힐을 기다린다. 며칠을 기다려도 라힐이 오지 않고 라힐과 머물렀던 집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자인은 요나스를 커다란 냄비에 태우고 거리에서 생활한다. 다시 마약주스를 만들어서 끼니를 해결하지만 아기 요나스를 돌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자인은 평소 요나스를 탐내던 브로커에게 주고 자인도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출생증명서를 가지러 집에 온다. 

그러나 자인의 부모는 자인의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서는 없었고 사하르가 임신하였다가 하혈이 심하여 병원에 갔지만 출생 신고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치료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인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칼을 들고 달려가서 수퍼 남자를 찔렀지만 미수에 그친다. 감옥에서 그는 텔레비전의 생방송 진행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한다. 법정에서 자인은 또다시 아이를 가진 자신의 부모가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말한다. 법정에서 자인의 부모들은 항변한다. 자신들을 비난하겠지만 자신들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고 자인처럼 살아왔다고 말한다. 영화는 레바논의 종교적 문제와 무지와 빈곤의 문제로 성장 되어진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자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에 고시하고 있다. 

영화는 가난하다고 한 마디로 규정짓는 것 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사는 어린 동생들이 많은 자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자인이 부모를 고소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자인과 여동생, 그리고 자인이 만나게 되는 에티오피아 난민인 미혼모 라힐, 그리고 그의 아들 요나스의 이야기이다. 

한편 영화 <가버나움>의 국적은 레바논과 프랑스이다. 레바논 출신의 나딘 라바키 감독의 고의적 제목인 ‘가버나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기적을 많이 행했던 도시이다. 예수는 이곳에서 여러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기를 바랬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가버나움은 기적에만 의존하고 타락하여 멸망하게 된 도시의 이름이다. 또한 가버나움의 프랑스어 표기의 의미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곳, 뒤죽 박죽 엉망진창인 상태이며 문학적으로는 ‘혼돈’을 의미한다. <가버나움>의 의미를 알게되니, 이 영화의 결말이 자인과 요나스에게는 행복한 결말임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기적은 있었지만 가버나움의 상태는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세상의 어디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의 멸망에 대한 전조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가버나움>의 감독 나딘 라바키는 레바논의 배우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가버나움>에서 자인의 변호사로 출연하고 있다. 그녀는 아랍 여성 감독으로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1차 후보에 거론 되어지고 있으며 레바논 최초로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 작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버나움>의 제작과 16곡의 음악을 담당하여 영화에 도움을 주었던 할레드 모우자나르는 감독의 남편으로 레바논의 여성문제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활동을 하는 나딘 라바키 감독의 영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베이루트 시내에서 항상 지나치기만 하는 거리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의 목표대로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그 영향력은 크다. 아랍권을 넘어서 전세계에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하며 자신의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게 한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어떠한 사람도 가버나움의 상황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감독이 4년을 준비하고 6개월 촬영으로 완성된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스토리 전개가 예측하지 못한 선택들로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에서 자인은 마약쥬스를 만들어 파는 가족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남을 배려할 성품을 가질 수 없다고 지레 짐작 할 수 있다. 자인이 라힐의 돈을 숨기는 장소를 알았을 때 관객은 자인이 그 돈을 훔쳐서 달아나고 라힐은 다시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그러나 자인은 요나스를 최선을 다해 돌본다. 그리고 출생증명서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온 자인이 여동생 사하르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칼을 들고 뛰어갈 것이라고 예측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인은 너무 어리다. 

반면 예측가능한 장면을 생략하는 연출이 영화의 집중을 높인다. 자인이 칼을 들고 집을 뛰쳐나가 달려가 슈퍼 남자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나 라힐이 잡혀가는 장면 등 관객이 짐작 되어지는 다음 장면의 생략은 가난과 분노영화의 전형적 요소를 피하고 주인공 ‘자인’을 주목하게 만든다. 

그리고 빈민촌의 촬영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보여지며 지상의 작은 골목들과 더러운 집에서 살아내는 안타까운 자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두번째로 감탄한 것은 배우들이다. 영화의 주인공 자인(자인 알 라피아)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배우들은 실제 난민이고 불법체류자이다. 자인은 배달 일을 하는 소년이었고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는 길거리에서 껌을 팔던 소녀였으며 요나스의 엄마인 라힐은 실제 에티오피아 난민이고 실제로는 여자아기 이지만 라힐의 귀한 아들 역을 맡은 요나스의 실제 부모 역시 불법체류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들의 험난한 실제 현실을 보여준 것에 더해져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이미 매우 감동적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 배우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것은오히려 영화 <가버나움>을 감독의 의도대로 사실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영화 <가버나움>의 장점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의 장면들과 감흥이 묵직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영화의 결말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쁜 순간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그 소년의 12여년의 힘든 삶의 이야기는 관객의 머리와 마음에 남는다. 영화의 인상적인 몇 장면들은 각인 된 듯 일상 속에서 떠올려진다. 그 중에서 제일은 ‘자인’ 그 자체 이다. 자인이 집을 나와서 간 곳은 가족들이 휴일에 함께 가는 놀이동산이다. 그 곳에서 자인은 일을 구하지 못하고 막막하게 돌아다니다가 어머니 같은 여자의 동상이 꼭대기에 있는 놀이기구에 올라간다. 자인은 그 놀이기구위에서 걸어 다니다가 중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여자 동상의 윗옷을 풀어헤쳐서 가슴이 드러나게 한다. 쓸쓸한 느낌이다. 자인이 아직 엄마가 필요한 어린이라는 생각이 자인의 작은 체격만이 아니고 엄마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자인의 어린 마음이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자인의 얼굴과 몸짓, 자인은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책가방을 매단 미니버스, 여동생 사하르가 자인의 더러운 셔츠를 엉덩이에 불룩하게 넣고 걸어가는 뒷모습, 요나스의 엄마를 찾아 거리로 나온 자인과 요나스의 모습들, 감옥에서의 라힐의 심정이 전해지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과장되지 않은 음악과 함께 온전하게 전달되어졌기 때문에 결말에 긴 박수가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 <가버나움>의 엔딩 크레딧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자인의 웃는 모습이다. 자인과 배우들의 영화 출연 이후의 변화도 보여주는데, 자인과 그의 가족들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하게 되었고 다른 출연진들도 도움을 받아서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영화<가버나움>은 베이루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인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게 했고 그들은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는 것을 배우들이 맞이한 기적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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