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깨달음과 늦은 후회 사이.
어릴 적 어디선가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문장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살면서 후회를 안 하는 삶은 없다. 그저 후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이후로도 수많은 책과 글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위 문장의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 수많은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와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간이 20년도 더 지나 이제는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 하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이별을 선택하였다. 나름 긴 시간 고민했다고는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긴 시간 고민했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한다면, 3개월 준비한 일이 3년을 준비 한 일보다 잘 될 수도 없는 것처럼, 시간이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은 아니다. 결국 시간과 관계없이 나는 또다시 후회할 짓을 했다. 아무리 후회가 없는 삶은 없다고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반복될 것만 같은 이 후회의 둘레라는 감옥에서.
이별, 후에
한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 자체가 늘 조심스럽고 신중한 편이었던 나에게 이별은 만남보다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별을 말하는 것은 고백 이상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결국 두 갈랫길에서 어리석음을 선택했다. 어쩌면, '잠시 시간을 갖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별 후 한동안은 애써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연락하고 싶은 마음 또한 꾹 눌러가며 지냈다. 어렵게 꺼낸 말들이 모두 가볍게 느껴질 것만 같아서. 돌이켜보면 그깟, 자존심 때문에.
이별, 1개월 후에
복잡한 마음을 극복하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의 절반은 여행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었다. 웃고 있지만 마음속 어딘가 아린 통증이 여행 내내 가시지 않는다.
이별, 3개월 후에
스스로 정해 둔 원칙 중에 하나는 '이별 후에 바로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전 연인에 대한 예의이자 새로운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기회는 제법 찾아왔다. 이외로 나이를 먹고 소개팅이 밀려들어 의아하면서도 놀라웠다. 어쨌든, 주변에서 나를 좋게 봐준 것이라 생각하며 거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꾸준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소개팅 경험 자체가 드물다 보니 나의 대응 방식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소개팅 잘하는 전략이라고는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면접도 많은 연습이 경험이 필요한 것처럼 단기간에 서로를 평가해야 하는 소개팅 또한 면접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소개팅의 장점이 있었다면? 생각지도 못하게 다양한 직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 단 한 번의 이직 없이 근속 17년을 근무하신 분부터, 밤낮없이 바쁜 방송국 작가, 이제는 초등학생도 아는 대기업의 P.M까지. 외에도 소개팅을 빙자한? 자연스러운 자리 주선 등의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중에는 교수, 변호사 같은 소위 엘리트분들도 계셨다. 어떻게 보면 소개팅이라는 망원경을 통해서 보다 넓은 세상.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번갈아 가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셈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소개팅은 참 어렵구나.
온라인 만남..?
이성을 만나는 또 다른 경로. 소위 말하는 '어플 혹은 카톡 오픈 채팅'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하지만 이는 내가 원하는 노력의 방식과 달랐다. 사람 만나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다 같이 뛰기보다는 혼자 걷는 게 좋았고, 선물로 받은 와인에는 먼지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참여했던 온라인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논알코올을 지향하는 독서 모임'이었다. 다행히, 호스트 마음에 들었을까? 지금도 책 하나는 열심히 읽으면서 지낸다.
깨진 잔
흔히들 이별은 '쏟아버린 물과 깨진 잔'에 비유를 하고는 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쏟아버린 물은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조차 없이 말라 버린다. 반대로 깨진 잔은 그 파편의 잔상들이 그대로 흩어져 남아 있다.
사실 이 단어의 의미는 한번 끝난 관계는 재생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데, 모든 이별이 다 그렇지 않다고 한 번은 믿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이별이 쏟아버린 물처럼, 시간이 지나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깨진 잔의 수많은 파편들을 손에 피가 나더라도 주워 담아 하나하나 다시 붙여놓고 싶었다. 파편들을 만지며 느껴지는 통증보다 그동안 상대를 더 아프게 한 것 같은 미안함이 전해오는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파편의 조각들을 다시 붙인다 한 들. 그것 또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섬세한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며,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붙인다 한들 그 곳곳에 남아 있는 파편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미 한번 깨진 조각들을 붙였으니' 완전히 굳는 데는 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중에 뜨거운 물이라도 부으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쉽사리 부서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 주연의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는 명대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듯 전하는 It's not your fault라는 대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대사가 틀렸다. It's my fault 그렇다. 내 잘못이 맞다. 내가 잘못했다.
이별은 본 시간만큼 안 봐야 하고, 웃었던 만큼 울어야 하고, 즐거웠던 만큼 고통스러워야 끝나는 것이라고 어느 슬픈 음악이 울려 퍼지는 영상 댓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내게 이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