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한 해를 보내며.
예전에는 이성친구와의 헤어짐이 이별의 범주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 이별은 꼭 '남, 녀 사이의 결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 가까이는 전 직장 동갑내기 동료의 죽음. (한 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동료의 죽음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유일한 혈육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그의 통증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마치, 연인과의 이별 후에 찾아오는 감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래서일까, 그 일을 계기로 나도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게도 찾아 올 이별의 시간을.
나를 세상에 있게끔 해 준 존재와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과 아닌 사이로 나뉜다는 것.
견디기 힘든 이 감정을 조금씩 연습해 보기로 했다.
동시에 이 또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히려 감사하기로 했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또, 이별
문득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고 쌓인 응어리가 더 이상 쌓일 곳조차도 없어서, 터져 나와 결국 이를 걷어 낼 용기가 부족한 사람의 마지막 선택지가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 후에 찾아드는 감정은 '아무리 물을 뿌려도 꺼지지 않는 불이 내 심장을 쉼 없이 태우는 것만 같은 고통'에 가까웠다. 그래서 술을 잘 마시거나 이별을 비교적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니었는데 뭐"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연애 자체가 그저 잠시 탑승했다가 내리는 버스처럼 가벼운 일상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는 그저 가치관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애써 이해하려 해 본다.
그 사이 나는 이별을 벌이라고 생각하며, 때로는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갔다. 하지만 결국 유일한 방법은 행복했던 시간만큼 아픔이라는 감정이 메마를 시간이 지나가야 한다는 것.
도저히 정리될 것 같지 않던 감정들도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라고 현실을 각인시키고. 앞으로는 같은 감정 앞에서 슬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견뎌내고 마주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일상에서 한숨을 내쉬는 일이 아주 조금씩 줄어드는 순간. 그리고 사람들과 섞여 있는 곳곳에서 내 감정을 티 내지 않고 웃어야 할 때는 같이 웃는다는 것. 그게 이별을 극복하는 마지막 과정이라고.
지브리 음악
나는 마음이 지칠 때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는 지브리 음악을 들으며 해소를 하는데, 그 이유는 가사 없는 멜로디가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 그게 다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애써 외면하는 것) 그런데 이 지브리 음악에도 가사가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반복하는 실수. 그때마다 사람은 하늘이 얼마나 푸르렀는지 깨달아.
이별할 때의 고요한 마음. 0으로 돌아갈 몸이 귀를 기울여.
삶이라는 신비로움. 죽음이라는 신비로움.
슬픔의 개수를 전부 말하기보단 입 맞추어 살짝 노래 부르자.
닫혀가는 추억. 그 속에서 언제나 잊고 싶지 않은.
산산조각 깨져버린 거울 위에도 새로운 풍경이 비치네.
지브리다운 가사였고, 여전히 위로가 되는 문장이었다. 이별이 많아서 힘들었던 한 해. 하지만 이 또한 인생의 연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연습이 부족한 만큼 아직은 서툰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야 아주 조금은 성숙해진다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