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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필맨 Jun 20. 2020

"갑자기 비보가 들려왔다. 아버지의 죽음..."

지금 많이 힘든가요

"갑자기 비보가 들려왔다. 아버지의 죽음..."


위의 상황은 누구나 겪을 상황입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고 겪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던 인생이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을.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우리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단 죽음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위기가 거쳐갈 것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설령 위기를 여러 번 극복했던 경우라도 위기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힘이 듭니다.


만약 당신이 현재 힘든 상황이라면 위기의 순간일 겁니다.




심리학계의 3대 거장 중 하나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위스콘신 대학의 심리학 교수 '로버트 그린'은 자신의 저서 <인간 본성의 법칙>을 통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 비교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전합니다. 비교하는 본능은 공동체를 이루어 생존하는 인간의 기제입니다.


생태계에서 사자, 호랑이, 하이에나 같은 상위 포식자에 비해서 약했던 우리의 선조 사피엔스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생존에 성공합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는 던바의 법칙(한 사람당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 : 최대 150명)을 초월한 마을,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힘은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믿음으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우리 인간은 현재 지구촌 사회를 만들어서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죠.


공동체가 커질수록 사회성이 중요해집니다. 특히 우두머리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공동체에서 쫓겨날 수 있었죠.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리더에게 잘못 찍히면 순탄치 못합니다. 즉 우리 인간은 오랜 기간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은 비교 본능이라는 기제 때문인 것이죠. 아들러는 민더베르티히카이트게퓔(Min-derwertigkeitsgefuhl)라고 했습니다.  '가치'(Wert)가 '더 적은'(minder) '느낌'(Gefuhl)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열등감'이라고 하죠. 참고로 열등감이라는 개념을 현재 통용되는 개념으로 쓴 사람이 아들러라고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는 장밋빛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잦은 출장으로 자주 못 봤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독박 육아하게 됩니다. 아내는 당연히 힘들어합니다. 다른 부부의 아내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부당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무뚝뚝한 남편은 표현이 서툴러서 감소된 감성을 회복시켜주지 못합니다. 결국 모든 원인은 결혼을 선택한 자신과 남편에게 화살이 갑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후회에 이르게 된 가장 주된 이유가 바로 열등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우주공간에서 홀로 살아왔고, 살아간다면 후회할 일이 없을 겁니다. 자신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비교 대상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동식물에게 비교도 하죠. "개팔자가 상팔자다"라는 말 모두 아실 겁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시험을 봤는데 점수가 떨어졌거나,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후보선수로 벤치를 지킨다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그렇습니다. 열등감을 느낍니다. 바로 비교의 대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현재 힘든 상황을 파고들면 결국 열등감에 도달하게 됩니다. 남보다 잘나지 못해서, 남보다 뒤떨어져서, 남들만큼 하지 못해서라는 이유가 수면 위로 떠오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나보다 앞서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다"


어디서 많은 듣던 격언이죠.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자만에 빠지거나 위축되는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는 자만과 위축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너무 진부한 말이기는 하나 진리인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성장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경우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고통의 순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벗어날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까?


나 자신과 문제의 상황을 제대로 직시했을 때 변화의 레이스의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직시된 고통을 수용할 때 출발 총성이 울리게 되죠. 세계적인 심리학자 '아이슬링 레너드 커틴'의 저서 <작은 것의 힘>에서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날 때 벗어나는 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어떤 심각한 사건을 겪고 치료를 받게 되면 완전히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아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해야 합니다. 수용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현재 힘든 이유는 열등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힘들다면 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용해야 합니다. 수용할 때 현재 상황을 타파할 실행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이 힘듭니까. 수용하세요.


3000년 전 솔로몬이 다윗의 반지를 위해 생각해낸 문장이 당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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