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흔한 일을 흔하지 않게

by Doyle

2020.07.19.


주말 밤 야근, 보도국에 전화 두 통이 걸려 왔습니다.


1. ○○지역 '극단적 선택'

목소리는 다소 느릿했지만 내용은 갑작스러웠습니다.

"오늘 ○○○ 지역에서 제보 들어온 게 없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낮 11시 반쯤 젊은 남녀가 차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걸 봤는데, 오늘 저녁 메인 뉴스에도 이런 내용이 하나도 보도되지 않았단 겁니다.

8시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 KBS 9시 뉴스, YTN과 연합뉴스에 지역신문까지….

대체 사회부 기자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며, 답답함이 가득 묻어나는 말까지 남겼습니다.


2. 반찬에서 '벌레'… △△휴게소

강원도 지역으로 가던 한 남성은 한 휴게소에서 육개장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콩자반에서 그만... 벌레가 나온 겁니다.

분기탱천한 이 남성, 즉각 벌레를 영상으로 찍고, 제보 전화를 걸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 남성이 남긴 말입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세상엔 참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모이는 곳에 있다 보니, 비슷한 사건도 하루에 몇 건씩 보곤 합니다.

아파트에서 불이 나고, 고속도로에서 차량 몇 대가 잇따라 부딪히고, 지하철이 탈선하고, 누가 누굴 죽이고,

죽고…. 개인의 일상에선 정말 가끔씩, 혹은 일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일이지만, 매일같이 경찰을 취재하고 사건을 접하는 기자들에겐 흔한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결국, 기자들은 '보도 가치'를 따지게 됩니다. 비슷비슷한 사건 중에 어떤 사건을 지면에, 방송에 담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겁니다. 저널리즘 개론 수업 시간에 배우는 저명성, 근접성, 시의성같은 개념들이 그런 것들인데, 실상은 기자들의 '감'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극단적 선택'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이젠 웬만해서 뉴스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어졌습니다. 유명인이 아니거나, 특별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 어렵습니다. 만약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혹한 방법이라면 모를까...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국가의 현실입니다.


하물며 벌레는 어떨까요.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밥집에서는 벌레가 나올 것이고, 손님은 항의할 것이고, 주인 및 주방장은 멋쩍어하며 사과를 할 것이고, 또 다른 몇 명은 뻔뻔하게 나설 것이고….


2024.09.03.에 아래 글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자가 흔하지 않은 일만 보도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은 보도할 수 없더라도,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다음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면, '저번에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면서 담아두었던 사건을 찾아보는 겁니다.

비슷한 사연으로 자살하는 일이 잇따르거나, 똑같은 벌레가 전국 곳곳 식당에서 나온다거나...


기자가 자신만의 관찰력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평범한 사건이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됩니다.

물론 이런 관찰력을 갖는 게 단시간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 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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