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특별해지지 않도록

by Doyle

법원에는 여러 피고인들이 모였습니다. 부패한 정치인,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른 인기 연예인,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참혹하게 살해한 사람 등등..


죄의 유무와 경중을 따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법정에서 검사가 공소장을 읽으면 세상에 이런 파렴치범이 없었고, 변호인들의 변론을 들으면 인간적 연민이 솟구쳤습니다. 법대에 앉은 판사들은 죄의 무게를 저울에 달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의 형량은 사람들의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판결이 선고되면 사람들은 판사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사법부가 죽었다며 비난을 쏟아냅니다. 적절한 죗값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적절한 죗값이란 과연 정의로운 죗값과 동일할까요? 법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검찰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마음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치적 역학관계를 떼놓고 볼 수 없는 사건들이 검찰청으로 몰려왔습니다. 수사의 토막토막을 취재해 기사를 쓰면 사람들은 일단 욕을 했습니다. 상대방도 과거에 검찰을 동원해 우릴 탄압했으니 그들도 당해야 싸다는 분노 서린 말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죄가 있는지 없는지보다는 누군가가 검찰청을 들락날락하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 됩니다.


검찰이 법과 원칙, 증거와 법리에 따르는 수사를 입버릇처럼 강조하더라도, 그런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면 검찰 스스로도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되는 사건'이라면 창의적인 법 해석과 수사력을 동원해 끝내 재판에 넘기지만, 그런 사건이 아니라면 역시 죄가 안되는 이유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영부인을 무혐의 처분한 그 '법률가의 양심'을 의심하는 바는 아닙니다. 다만 그 양심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과 또다시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 소수자들에게 적용되지 못한 정의를 판결로 지적할 때 감동을 받았고, 헌법재판소가 미래 세대를 위한 결정을 내놓을 때 희망을 봤습니다.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할때가 훨씬 많지만, 그래도 법은 사람을 떠날 수는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20년쯤 되는 경력을 가진 한 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아 이거 이상하다, 범죄가 성립할것 같다 그러면 어떤식으로든 범죄가 되거든. 반대로 상식적으로 죄가 안 되면 기소했다 하더라도 무죄가 나와. 법이 특별한 게 아냐.' 법이 더 특별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년 반에 걸친 법조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법원, 검찰, 대검, 대법원 모든 출입처를 경험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좀 억울헸습니다. 취재도 안 되고 맨날 물만 먹는 부서에 왜 나만 오래 남아 있어야 하나.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고, 쉽지 않은 순간을 견뎌내며 배운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 삶에 여러 방점을 찍어 준 귀한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잠깐 쉬고 또다시 새로운 모험을 떠나보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흔한 일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