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가 갈린 직후 카리니는 칼리프의 악수를 거부했고, "남자들과도 여러 변 경기를 해봤지만,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카리니의 출신국인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도 "남성의 유전적 특성을 가진 선수가 여성과 맞붙어서는 안된다"며 거들었습니다. 남성의 유전적 특성을 가졌다니?
남성 염색체를 가진 여성 선수
이마네 칼리프는 1999년 5월생, 알제리의 경량급 여성 프로 복서입니다. 2018년 세계 여성 복싱 챔피언십으로 공식 경기에 데뷔했고, 올림픽 출전은 도쿄 올림픽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이 두 번째입니다.
주 무기는 178cm 장신에서 나오는 긴 리치와 파워입니다. 도쿄 올림픽에선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이듬해 2021년 이스탄불 세계 복싱 토너먼트에서 금메달, 2022년 스트라냐 세계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금메달을 잇따라 따냈습니다. 명실상부 여자 복싱계의 정상급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2023년, 국제복싱협회(IBA)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칼리프에게 '실격'처분을 내렸습니다.
칼리프의 DNA 검사에서 일반적인 남성의 염색체, 'XY 염색체'가 발견됐다는 이유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사이, 이른바 '간성(間性, Intersex)'인 겁니다.
IBA는 실격, 올림픽은 출전
IBA에선 실격처리됐지만, 칼리프는 올림픽에는 잇따라 두 번 출전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가 칼리프의 출전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카리니와의 경기 이후 '성별 논란'이 불거지자, IOC 대변인 마크 아담스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그 선수들은 여권에 여성이라고 표시돼 있고,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했습니다. 이 논란을 더 키워 일종의 '마녀 사냥'을 해서는 안 됩니다." IOC 입장문 전문
여자 57kg급에 출전한 대만의 린위팅 역시 XY 염색체가 발견돼 같은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XY 염색체 여성 복서'는 공정할까?
경기 이후 칼리프의 '성별 논란'이 불거졌고, 미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도 "남성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한 숟갈 얹었습니다.
비판의 대부분은 칼리프를 '남성→여성 트랜스젠더(MTF)'로 보고, 여성 경기에 출전해선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칼리프를 트랜스젠더로 표현한 보도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칼리프는 트렌스젠더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고, 내내 여성으로 살아왔습니다.
칼리프의 아버지 오마 칼리프는 인터뷰에서 "우리 아이는 딸이고, 여자아이로 자랐습니다. 우리 딸은 강한 여자아이고, 나는 우리 딸을 용감한 사람으로 키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칼리프의 올림픽 출전은 공정한 걸까요?
사회적 성(性)과 생물적 성(性)
흔히 성별을 구분할 때, 사회적 성(gender)과 생물학적 성(sex)를 구분하곤 합니다. 1955년 뉴질랜드 출신 성 과학자 존 머니가 처음 내놓은 이론입니다.
유전자와 생식기관 등으로 구분되는 선천적 성이 생물학적 성이라면, 사회에 의해 구성된 역할이나 활동 등을 통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사회적 성입니다.
스스로 여성이라는 성을 선택한 만큼, 여성으로 취급돼야 한다는 칼리프의 뜻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하고,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칼리프가 택한 사회적 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칼리프가 올림픽 무대에 선 운동선수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올림픽은 '생물학적 성'으로 남녀를 나눠 토너먼트를 진행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담긴 모든 요소를 극한까지 끌어내 한계에 도전합니다. 이런 무대에서 키, 힘, 스피드, 체력 등을 결정짓는 XY 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일반적 XX 염색체 선수들과 경쟁한다면, 이는 XX 염색체 선수들에 대한 또다른 차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백년 가까이 차별에 눈감는 올림픽
올림픽에 칼리프 같은 간성 선수가 출전한 건 처음이 아닙니다. 무려 1932년, 폴란드의 스텔라 왈시는 최초로 간성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육상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역시 XY 염색체를 갖고 여성 선수들과 겨룬 결과였습니다.
IOC가 '성별이 확실하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별을 검사하게 된 건 1936년이 되어서였고, 물론 그 후에도 수많은 간성 선수들이 각종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단지 과거에 비해 미디어가 발달하고 선수 개개인의 사연이 더 자세히 알려지게 되면서, 칼리프의 사례가 더 조명받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XX 염색체를 가진 선수들이 백년 가까이 차별받았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IOC는 올림픽 정신의 기본 원칙이 '인종과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언어, 종교 등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현대화하고 성별과 성적 지향이 다양해지면서, IOC가 이러한 차별 뿐만 아니라 역차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출전 선수들의 성별을 '여권 기재'로 구별하는 것에서부터 그렇습니다.
차별은 공평하지 않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결국 칼리프는 여자 복싱 66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역시 성별 논란이 있었던 대만의 린위팅도 57kg급에서 우승했습니다. 린위팅은 "금메달로 올림픽 참가 자격을 증명했다"고 말했고, 칼리프는 "매일 밤 울면서 엄청난 불평등에 시달려야 했다"고 돌아봤습니다. 자신을 비난한 이들을 검찰에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선수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링 바깥에서는 수많은 차별과 부당한 시선에 시달렸을 거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의 약자가 항상 약자로 남는 건 아닙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약자가 강자가 되고 강자가 다시 약자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가 발전하며 공정의 기준도 다양해지는 만큼, 작은 차별에 무감각한 올림픽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이벤트보다도 인류를 하나되게 만드는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