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깬 경민이는 침대 아래에서 자고 있던 초등학생 동생이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경민이는 방을 뛰쳐나왔지만 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아버지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며 동생을 불러 깨웠다. 경민이는 수도꼭지를 오른쪽 끝까지 돌려 차가운 세수를 몇 번이나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동생이었던 검은 벌레는 경민이 왼쪽에 앉아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벌벌 떠는 경민이의 이마를 짚으며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는 길에도 벌레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에도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벌레 옆을 스쳐갔다. 청진기를 배에 몇 번 대 본 후 의사 선생님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별 이상 없는데요. 피곤해서 그런 것 같으니 수액 맞고 좀 쉬다 가시죠." 병원 침대에 누운 경민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좀 자고 나면 괜찮아 지겠지. 간호사가 수액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 어딘가 서툴러 보이는 간호사는 머뭇머뭇하더니, 경민이의 팔을 찔렀다 이내 다시 뺐다. 혈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5센티짜리 바늘이 오른쪽 팔뚝을 네 번째 찌를 때였다. “아얏!” 비명을 지른 경민이는 짜증이 벌컥 솟는 것을 느꼈다. ‘요즘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 행세하면서 나댄다던데, 이 사람도 그런 거 아냐? 보나마나 지잡대 간호학과나 겨우 나온 조무사충이겠지 뭐” 눈에 불을 켜고 다시 간호사를 노려본 경민이는 또 한번 비명을 지르며 침대를 뛰어내렸다. 간호복을 입은 벌레 한 마리가 바늘을 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을 뛰쳐나온 경민이는 무작정 내달렸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갈수록 벌레는 더욱 많아졌다. 병원 앞 카페에는 벌레 두 마리가 마주앉아 쉭쉭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옆에는 조그만 벌레가 유모차에 누워 배를 보인 채 꼼지락거리는 중이었다. 경민이는 계속 달렸다. 광장의 벌레들은 얼굴 어딘가에 담배를 끼운 채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사각사각댔다. 더듬이와 날개에 주름이 지고, 허리가 굽은 늙은 벌레들이었다. 경민이는 또 달렸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되어 있었다. 익숙한 종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경민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토를 했다. 점심시간 종소리와 함께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경민이는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잠갔다. 어디도 갈 곳이 없었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오늘 일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민이는 컴퓨터를 켜고,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로그인 후 ‘글쓰기’를 누르는 순간, “새 댓글이 달렸습니다”는 알림이 왔다. 바로 어제 썼던 글이었다. “틀딱충이나 급식충이나 다 죽어야 함” “카페에서 떠드는 맘충들 극혐” 따위의 내용이었다. 처음 벌레를 봤을 때 느꼈던 역겨움이 다시 올라왔다. 글을 지우려고 마우스를 잡았지만,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경민이는 자기 손을 한번 내려다보고, 거울로 자기 얼굴을 한번 더 확인했다. 검고 축축한 껍질이 온몸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