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나는 심장 떨려 더는 못 보겠다. 늬들끼리 보고 나오든지 해라.” 공연 내내 “시상에” “아이구 무서워라”를 연발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하이라이트인 공중 곡예 묘기가 막 시작한 참이었다. “할머니, 여기가 진짜 재밌어요”라는 손자 손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할머니는 결국 황망히 천막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할머니 칠순 생신을 맞아 다같이 모인 가족들은 김이 팍 새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서커스 이야기를 꺼낸 삼촌의 얼굴은 더 흙빛이었다. 그것도 당시 이름깨나 날린 ‘동춘 서커스단’이었는데…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쇼가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모든 공연은 기획자와 연출자, 배우 사이의 정교한 합(合)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잘 짜인 한 편의 쇼라고 생각하면, 제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라도 코웃음을 치며 볼 수 있었다. 그날 본 서커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련히 안전장치도 튼튼하게 하구, 훈련도 잘 받았을까. 어차피 속이는 사람만 있고 속는 사람은 없는, 그야말로 쇼인 것이다. 쇼는 그저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좀더 머리가 굵은 다음에야 ‘무서운 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라 했던가,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현실에도 있었다. 삼복 염천에 에어컨 수리기사 아저씨는 7층 아파트 창문 밖에 매달렸다. 그는 장맛비 같은 땀을 온몸으로 흘리며 에어컨 실외기를 붙잡고 끙끙댔다. 사다리차가 올 때까지 제발 기다리라는 가족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일을 끝낸 그는 고객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해피콜에 좋은 평가를 남겨줄 것을 부탁했다. 어디 그뿐인가. 하청업체 노동자들 역시 전기가 끊긴 전선 위로 올랐다. 22,900 볼트가 흐르는 전선을 고무장갑 하나 낀 손으로 잡았다. 파업 노동자들은 투쟁을 위해 크레인 위로, 굴뚝 위로 올랐다. 수십 일에 걸친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하늘로 내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쇼는 감독과도, 스태프와도, 조연출과도 협의되지 않은 것이었다. 굴뚝 위에 오른 파인텍 노동자 두 명 중 한 사람인 차광호 씨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어컨 수리기사와 한전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안전을 거절당했다. 하루하루 생계가 걸린 이들은 스스로 안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쇼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쇼를 쇼로만 보면, 그 이면의 처절한 이야기를 알 수 없다. 며칠 전, 사자 네 마리가 초원으로 풀려났단 이야기를 들었다. 우크라이나 서커스단에서 사육되던 녀석들이었다. 35제곱미터 안에 갇혀 살던 사자들은 곧 1만4천제곱미터 자연으로 돌아갔다. 쇼를 쇼로만 보지 않은 어느 동물 단체의 노력 덕분이었다. 오늘도 하늘에 갇힌 공중 곡예사들은 언제쯤 지상으로 풀려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