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게 있다가도, '이 돈이면 몇 끼니를 먹을 수 있는데'라며 대충 때우진 않나요?
값이 더 들지만 내가 찾던 A 제품과 질이 조금 낮아도 가격이 저렴한 B 제품 중, "당연히" B를 고르며 살진 않나요?
친구들 만나면 쓰는 몇만 원은 개의치 않은데, 나에게 쓰는 단돈 몇천 원은 주저하지 않나요?
이것은 모두 나의 이야기다.
"아빠, 이 만원이면 피자스쿨 네 판이야! 그냥 싼 거 먹어."
어릴 적 나에게 피자스쿨의 오천 원짜리 피자는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었다. 오천 원이면 해결되는 끼니를 두고 비싼 것을 먹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가끔 궁금한 음식이 생겨도 새롭게 도전하지 않았다. 나에겐 이미 아는 맛, 이미 아는 음식이 익숙했다.
가성비를 따지는 습관은 음식에만 그치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학원비 걱정이 우선하며 '어차피 꾸준히 하지도 못할 텐데' 단념했고, 마트를 가면 사고 싶은 것보다는 무조건 싼 것을 구매했다. 그렇게 나는 모든 방면에서 가격 대비 성능, 가격 대비 맛, 가격 대비 쓸만한 것을 우선했다. 그 이상의 경험은 궁금하지 않게 됐다.
며칠 전 생일을 맞아 언니는 나를 어느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단순히 밥만 먹는 줄 알았던 나는, 식당에 들어서자 이곳은 내가 이제껏 가본 식당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도 생소한 티 오마카세 레스토랑. 큰 창 너머 아름다운 북촌의 전경이 비치는 그곳에 손님이라곤 우리 둘이 전부였다. 단 두 명의 손님을 위해 두 시간 동안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 정갈한 식기와 음식, 오픈 키친 너머 들리는 요리 소리가 전부인 곳.
티 오마카세에선 코스 음식마다 어울리는 차가 제공됐다. 입맛을 돋우는 가고시마 말차 스파클링 티와 구운 토마토, 네 가지의 치즈가 얹어진 홈메이드 바질 오픈 토스트까지.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삼키며 먹었다. 모과, 복숭아 원물 과일로 우린 백차와 메인디쉬 스테이크는 아주 잘 어울렸다. 고기를 먹으면서 술만 먹어봤지, 고기와 함께 먹는 차에 이런 풍미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마지막 티였다. 디저트와 함께 나온 데니쉬 보테니컬 티는 첫맛, 음미하는 맛, 삼키는 맛이 모두 달랐다. 깔끔한 첫맛을 지나 향긋한 중간 맛을 음미하면, 오묘한 맛이 삼키는 순간 입 안 가득 퍼진다. 난생처음 먹어본 맛과 경험이었다.
두 시간 동안 나는 차와 음식을 천천히 음미했다. 두 명을 위한 음식을 맛보며 나의 눈과 코와 입은 한껏 행복했다. 이곳에선 내가 아는 맛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성스럽고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도 정성스럽고 정갈하게 살고 싶어 졌다. 돈을 버는 이유를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로 한정 지어온 과거가 떠올랐다. 언니는 나에게 말보다 체험으로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을 느끼게 했다. 가성비만 따지던 나의 세상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세상으로 확장됐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좋은 음식의 매력에 푹 빠진 나의 이야기에 엄마가 말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얼마를 벌어야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가?
최소 금액만 벌고 산다 해도 일 년에 한 번은, 넉 달에 한 번은, 자신을 위한 이벤트를 계속해서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돈의 액수는 후차적인 문제였다. 좋은 경험은 얼마를 벌어야지만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다. 더불어 무조건 비싼 경험이 좋은 경험인 것도 아니다. 돈을 모아야 할 이유를 단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에 그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당장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했다. 만 이천 원 남짓하는 돈에 고민하다 '나중에 핸드폰으로 봐야지.' 하는 단념을 돌아보는 것이다. 돈만 따지다 보면,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일은 수도 없이 쌓인다.
나를 위한 이벤트가 꼭 몇 십만 원이 드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꾹꾹 누르며 살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은, 더 돈이 드는 일이라면 넉 달에 한 번은, 그마저도 버겁다면 일 년에 한 번은 소비해도 괜찮다는 깨달음이었다. 단돈 만원을 쓰더라도 나의 취향을 알고 쓰는 것, 나는 이것을 현명한 돈쓰기라 부르고 싶다.
현명한 돈쓰기의 방법은 고급 레스토랑이 될 수도, 비싸서 주저했던 옷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될 수도, 밤마다 일기를 쓸 때 켤 수 있는 향초가 될 수도, 즐겨 듣는 음악의 CD가 될 수도 있다. 배우고 싶었던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하는 것이 될 수도, 혼자 경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즉 현명한 돈쓰기의 영역은 비싸다는 이유로 주저한 물건일 수도 있고, 좋아하지만 굳이 참고 살았던 취향일 수도 있다.
한 번에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하기엔 많은 비용이 든다. 투자한 비용만큼 한 번에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하나씩, 한 달에 한 번 현명한 돈쓰기로 즐거움을 느끼고 취향을 가꿔가겠다 다짐했다.
좋은 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맛을 보며 나의 입맛을 알아가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시간이기에 중요하다. 이 과정을 숱하게 쌓으며 나를 알아가고,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돈을 버는 이유를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그치기엔 쳇바퀴 굴러가는 하루들이 종종 버겁곤 한다. 결국 인생은 긴 시간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야 한다. 현명한 돈쓰기는 삶을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것과 돈을 들여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옳다는 문제가 아니다.
한 달에 한번 나를 위한 현명한 돈쓰기는 몰랐던 나를 알아가자는 제안이다. 매 순간 가성비를 따지며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살기 보다, 써도 괜찮은 순간에는 마음껏 쓸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는 양쪽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가진 돈은 한정적이니 그 안에서 현명하게 선택하고 소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현명한 돈쓰기의 첫걸음은 결국 자신을 잘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