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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Jul 18. 2021

내가 목공을 시작한 이유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취준생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시간은 무한대로 늘어졌다. 자유로운 시간을 나름 잘 활용하며 살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들이 이어지자 나는 무기력함을 겪었다.


자잘한 성취들은 계속 있었다. 하지만 큰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작은 성취들은 물거품이 됐고, 나는 크게 휘청였다.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고 내 정신은 길고 긴 감기를 겪었다. 어딜 가나 소속이나 직업 없이 나를 소개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숨겼다.



나는 평범해도 나다운 일상을 다시 세우고 싶었다.

마침 소액의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고, 나는 그 수익의 대부분을 내가 배우고 싶은 것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바로 목공.







어릴 적부터 창작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글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딱히 재주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학창 시절 내내 공부 외엔 다른 진로를 딱히 생각한 적 없었다.



하지만 이십 대 중반을 넘어오면서

머리로 공부하고, 머리를 써서 일하고,

머리를 굴려 가며 관계 맺는 것에 권태를 느꼈다.

머리 아닌 몸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창작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졌다.





나무를 자르고 톱질하고 망치질하는 그런 몸짓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내가 배운 수작업은 고작해야 초등학생 때 한 스킬 자수, 중학생 때 학교에서 십자수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굉장히 재능이 없고,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정적인 활동이 아닌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움직임이 필요했다.


특정 업무가 아닌 이상 십 대, 이십 대 여성이 톱이나 드릴 같은 연장을 다룰 기회는 거의 없다. 나의 경우 비교적 쉬운 전동드릴도 써본 경험이 없었다. 그만큼 위험한 기계를 다루기 겁냈다. 혼자서도 기본적인 기계들을 다루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목공을 배울수록 디자인 감각도 중요하지만, 연장을 혼자서 다룰 줄 아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언제까지 내가 목공을 배울진 모르지만, 최소한 목공 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때까지 배우겠다는 혼자만의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목공을 시작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처음에 선생님은 내가 위험한 기계를 다룰 때

몸이 너무 경직되고,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말하셨다, 겁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처음 달은 공방을 다녀간 날이면 손목과 팔에 알이 배긴 듯이 쑤셨다. 안 쓰던 근육과 힘을 써서였다.

그동안 쓰지 않은 근육을 써가며,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몰입감과 재미를 느꼈다.

이제는 나무 조각이 튕겨 나올지도 모르는 테이블 쏘를 할 때도, 손가락이 잘릴 수 있는 끌질을 할 때도, 예전만큼 경직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잘하지 못해도 점점 능숙해지는 나를 보며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목공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는,

작업하는 3시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치수나 조립을 고려하는 것 외엔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은 어떤 고민이나 해야 할 일로부터 해방되는 듯하다. 그만큼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이 즐겁다.








"너한테 그 일이 맞지 않으면 어떡해?" 우려 섞인 타인의 이야기도,

'내가 지금 이래도 되는 때인가?' 주저했던 시간도,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해도 되는지, 해선 안 되는지

결국은 해봐야 알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 직감을 믿어 보았다.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다.




어엿한 직업인으로 더 큰돈을 벌 때 취미를 시작하면 좋겠지만, 그때의 나는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배우고 싶은 용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도,

좋아하는 것이 생긴 것도

실은 운명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걸 배울 용기가 없어지기 전에 지금을 선택했다.

나에게 수입이 많지 않다는 것과

목공보다 자소서 한 줄 고치는 게 더 이로울 거란 조언은 가볍게 무시했다.


여전히 나는 무직이지만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일상은 수평선의 파도처럼

다시 평정을 찾은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목공 혹은 인테리어 쪽을 수익화하겠다는 구상도 하게 됐다.




결국은 ‘내가’ 해봐야 안다.


취업 후의 시간만이 인생은 아니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시간도 소중한 내 인생이다.

‘이 산만 넘으면 고통은 끝’이라는 환상을

아직도 믿는 사람은 없겠지?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하고 싶은 나는

오늘도 나무를 다루러 공방에 간다.




최근 가장 애정을 갖고 작업한 종이 수납장
오크로 만든 스툴
시그니처 마크를 새긴 원목 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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