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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푸 Dec 21. 2021

괜찮다는 말 대신 숨을 참기 시작했다

어김없는 인생이란

나는 나의 감정에 솔직한 적 없다.

솔직하고 싶지만, 익명의 글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다.




지난 세 달간 나의 정신과 체력을 온통 일에 쏟아부었다.

회사에선 그저 잘 해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온 마음을 다해 일했다. 업무 시간 외에 출퇴근 길에도, 퇴근 후 집에서도, 업무 관련 강의를 듣고 책을 읽어가며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려 애썼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사이드 작업제안받았고, 몇 주를 퇴근 후 작업에 몰두했다. 주말은 여섯 시간을 내리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기도 했다. 큰돈을 받는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했고 점점 새벽에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 때부터 사이드 계속했다. 대학생 때도, 지금도 나의 생활비가 되어준 일이었기에, 쉬는 것을 줄일지언정 생활비를 놓을  없었다.







어느 순간, 괜찮다고 생각한 일들이 점점 버거워졌다. 힘들지 않냐는 타인의 질문에 습관적으로 "할만해"라고 답했다. 숨을 헐떡이는 한이 있어도 웃으며 "할만하다"라고 말했다. 타인에게 하는 대답이었지만, 사실 나에게 하는 세뇌였다.


괜찮아,

아직은 지칠 때가 아니잖아.

할 수 있잖아.



할 만 한건 사실이었다.

하루하루 가능은 했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시간을, 친구를 만나는 것을,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을 포기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간혹 저녁을 거르고 일을 가야 하는 날이 늘어나고, 어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기억을 까먹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하루는 미용실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정신 차리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생각에 잠겼던 건지, 가야 할 곳도 잊어버리고 습관처럼 다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목적지가 생각났다. 나는 다시 미용실로 향했고 계획한 대로 머리를 잘랐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주인이 나를 부른다. 가방을 갔다고 한다.


맞아, 나 가방을 들고 왔었지.

나는 돌아가 가방을 챙기고 문을 나선다. 열 걸음쯤 걸었을까 테이블에 두고 온 핸드폰이 생각난. 나는 다시 미용실로 향했다. 머쓱한 웃음으로 지으며 핸드폰을 챙겼지만, 왜인지 조금 슬펐달까. 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 건지, 그냥 아득했던 거 같.








충분한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달려왔기에 나는 숨이 턱끝까지 찰 수밖에 없었다. 각성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완전히 지치지 않고서는 하루를 끝낼 수 없었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기력이 없어서 하지 않았다. 시트콤 한편만 주야장천 돌려보며 아무 생각하지  시간이 유일한 나의 쉼이었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꾹 참고 있는 내가 보인다.

너무 빠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린 걸까.


나는 나를 쉽게 지치게 하는구나.




씨앗이 흙 안에 묻혀 그대로 썩어버린  알았다.

싹을 틔우기 위해 긴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모르고. 나도, 씨앗도, 적당한 때가 오면 아무도 모르는 새 싹을 틔울 것이다.


그러니 흙 안에 묻혀있는 시간을 슬퍼하지 말라고,

그 어둠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숨을 참고 주저앉은 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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