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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푸 Jan 21. 2022

사랑을 받을 자격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을 때면, 나는 사는 게 버거워진다.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만 건네며 살았다.

솔직해지자면, 줄 수 있는 사랑도 내 몫을 한 움큼 덜어놓은 후에 건네곤 했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언젠간 사라질 인연이라는 얄팍한 믿음을 핑계로.






사람을 잘 믿지 못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며 으스대며 산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순간이 만, 분명 함께도 존재했다. 함께가 아닌 인생을 나는 몇 년이나 살아 냈을지, 자신이 없다. 지난 시간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홀로 모든 시간을 이겨냈다 착각하며 살았다.



살아낸 날이 많아질수록 과분한 사랑도 늘어난다.

매번 재고, 또 잰 다음, 남은 사랑만 주었던 나와는 다르게

자신의 몫까지 기어코 떼어내 나에게 주는 사람을 보았다.

내가 뭐라고. 나는 그럴 수 없는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을 때면 나는 초라해졌다.

부족한 사람인 걸 알아서, 매번 이렇게 살지 말자 다짐해놓고 또 이렇게 살아갈 내가 너무 미워서, 나는 나로 사는 게 힘에 부쳤다.




제주에 지낸 지 열이레가 지났다.

그리고 얼마 전, 집을 소개해준 지인이 나의 방세를 지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고마움보다 큰 슬픔에, 며칠을 앓았다.

내가 줄 수 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을 보았을 때 나는 내 작은 마음을 탓했다. 왜 나에게 주는지 알 수 없는 사랑에 마음이 미었다.


나의 가난한 마음이 싫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애써 모른 체한다. 안 주고 안 받는 게 편하다며 덤덤한 척 하지만, 사실 주고도 안 받는 괜찮은 삶을 바란 것도 같다.



줄 수 있는 마음보다, 주고 싶은 사랑에서 한 주먹을 덜어내고 줬던 나였다. 그 한 움큼 덜어낸 사랑이 나를 지켜줄 거라 여겼다. 이 관계가 무너져도 내가 더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사랑은 간사했다.


나의 사랑은 사랑이 맞았을까?




사랑을 주는 마음보다 상처받지 않을 내가 먼저였다.

줄 때는 이리저리 마음을 쟀고, 사랑에 앞서 상황을 고려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주지 못했다.

초라한 마음으로 사랑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나로 사는 게 버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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