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대학교를 수료한 후, 일 년 동안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무 교육을 듣고, 자기소개서도 써가며 평범한 듯 치열하게흘러왔다. 나에게 있어 취업 준비가 힘겨웠던 이유는 '자격증 공부가 어렵다, 자기소개서 쓰기가 막막하다'는 것보다는'내가 뭘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도무지 알 수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취업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대기업 어디 썼어?" 라는 말이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졸업하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보다 이름 있는 회사에 소속될 만한 애인지가 더 궁금하구나. 딱히 서운하진 않았다. 맞아, 한국사회는 이랬지.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이름과 '어디' 소속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오랜만에 느껴봤달까.
첫 번째 시즌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마케팅' 직무에 대해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전공도 아닐뿐더러, 회사 경험도 없었으니 시작도 전에 뒤처진 기분이었다. 그다지 외향적이지도 않은 나도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몇 달을 보냈다. 간간히 보게 된 면접에서 "비전공자가 왜 마케팅을.."이란 질문을 듣기만 해도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툭 차오르는 걸 억지로 삼켰다. 나를 의심하는 듯한 질문이 내 몸에 쌓이고 쌓인 끝에,나도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 마케팅이 하고 싶은 건 맞아?
합격 한다한들 실무를 할 수나 있겠어?'
나에게 어떤 강점이 있는 건지, 나는 대체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자신이 없어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회피였다.
어떤 직무,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유명한 기업, 남들이 좋다는 기업은 다 썼다. 내가 일하고 싶은 산업이 아님에도 일단 붙으면 좋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간 밤낮없이 30여 곳의 자소서를 쓰던 나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어 뭐지?
나 아직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0에 수렴했던 자신감은 자꾸 마이너스를 찍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불합격하면 '역시나 그렇지' 생각했고, 서류를 붙으면 '대체 나를 왜 뽑았지' 의심이 먼저였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자신감이 없는 스스로가 이해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대학 생활 동안 미뤄온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희미해진 것이다.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삶 말고, 너는 어떤 시간을 살고 싶은 건데?
그때부터 이력서를 잠시 접어두고, 각종 책과 인터뷰,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직업을 만들고, 비슷한 사람 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다양한 삶을 보며, 점차 내가 추구하는 삶을 꿈꿀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미 성장한 대기업의 마케팅이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의 마케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가 애정을 가지는 프로젝트 혹은 사업을 알리고, 브랜드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창작물을 즐겨보고 만들었던 사람으로서, 콘텐츠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휘둘렸던 내 삶에, 가늘지만단단한 뿌리 하나가 내려앉은것을 느꼈다.
포괄적인 목표가 생기자, 나의 부족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기업의 마케터는 온라인 창작물을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디자인 자격증을 공부하고, 프로그램 툴을 배우는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어느새 스물여섯, '지금이 이럴 때가 맞나? 일단 아무 회사나 이력서를 넣어야 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사회가 '일반적으로 이래야 한다, 이것이 성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 쓸모도 없었다. 정말 단호하게 말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나와 100퍼센트 똑같은 성향, 자라온 환경, 현재 상황이 일치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없다. 타인의 삶을 통해 얻는 것은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삶에 초점을 맞춰, 평범한 스스로를 질책하며 지내온 지난 시간이 아까웠다. 내가 귀 기울어야 할 건, '취업'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마케팅'이라는 직무에 관한 조언뿐이었다. 관련 없는 말들에 내 길을 의심하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의 말에 집중해야 했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내 삶의 레퍼런스가 있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가볍기도 하다. 아무리 자신감이 떨어져도, 아직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제삼자보다는 나 자신이었다. 어느 상황에도 최선의 선택을 내릴 나를 믿고,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해보는 것'.나의 오랜 고민의 답이었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스타트업 브랜드의 마케팅 인턴이 됐다. 내일은 드디어 첫 출근날이다. 친한 지인들에게 일하게 될 회사의 홈페이지를 보여주면 하나같이 "너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명한 기업에 다니는 것도, 차원이 다른 연봉을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내가 애정 있는 기업에서, 하고 싶은 업무를 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후자의 가치가 삶의 동력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니다 보면 회사원의 삶이 다 비슷할 거라는 말도, 스타트업의 현실은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왕 돈을 벌어야 하는 거 '내가 기대되는 일을 하는 게 좋다'는 게 스물여섯 살, 지금의 결론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의욕을 꺾어버리는 말에 개의치 않다. 모든 사람이 일에서 부정적인 감정'만'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많이 존재한다. 특히 요즘 시대엔 개인이 다양한 도전을 누릴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국은 내가 해봐야 좋은지, 싫은지 알 것이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계속 좇고, 좌절하고, 다시 힘내서 걸어갈 뿐이다. 아니면 말지, 어차피 내 인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