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도 이 회사의 멤버로 계속 일한다면 즐겁겠다 생각이 들만큼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잘 맞는 곳이었다.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업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좋아했던 회사를 뒤로 하고 제주행을 택했다.
나는 왜 회사의 정규직 제안을 거절했을까?
쉽지만은 않았던 고민의 과정을 이곳에 남겨보려 한다.
일단 회사 생활이 싫어서도, 여행에 미쳐서도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지인을 통해 제주에 두어 달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커리어적 레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로부터 정규직 제안을 받았고 기쁜 마음도 잠시,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료들과 남아서 이 브랜드를 잘 키워보고 싶은 애정과 새로운 환경에서 이직을 도전해보겠다는 욕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회사에 답을 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도무지 선택을 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대표님과 다시 마주 앉은 순간까지 내 입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제안은 감사하지만 함께 하지 못할 거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 현실감이 탁 생겼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와 자발적인 백수를 택한 것이다.
그날의 퇴근길은 유독 쓸쓸했다. 나의 이성은 퇴사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마음의 확신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너에게 확신을 가져.
하기로 했으면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는 거야.
어떤 선택 후에도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남을 걸 알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놓지 못하면, 결국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나는 더 이상의 생각을 끊어내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기로 한 것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일은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제주도에 살기로 했던 집주인으로부터 개인 사정이 생겨 안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퇴사라는 칼은 뽑았고, 무는 커녕 마늘 한쪽이라도 썰고 싶은데 썰 수 있는 게 사라졌다. 더군다나 꾸준히 해온 사이드 잡도 제주에 가있는 동안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와 함께 다가올 2022년 임금 협상도 해야 하며, 서울로 돌아온 후에 계속할 수 있을지, 못하게 된다면 한동안 수입 없이 지낼 수 있을지…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걱정은 다시 늘어났다. 어느 쪽도 나에게 여간 불리한 게 아니었다.
서울에 남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했으면, 돈도 벌고 사이드잡도 계속했을 텐데. 나는 왜 항상 사서 고생을 할까 웃음이 났다. 그런데 어쩌겠어, 그게 나인걸. 더 큰 꿈이 생기면 도전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나였다. 안정적인 삶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삶이 훨씬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꿈꾸는 목표는 지금의 회사가 끝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한다 해도 지금의 업무량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거기다 제주에 살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겼으니 여행을 사랑하는 나에게 제주행은, 용기만 있다면 과감히 도전해볼 선택지였다.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연말이 지나갔다.
그리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을 조금만 견디자, 모든 건 생각보다 잘 해결됐다.
제주의 집은 더 좋은 곳으로 얻을 수 있었고, 사이드 잡도 원하는 만큼의 임금 협상을 마칠 뿐만 아니라, 서울에 돌아오는 대로 다시 함께 일하게 됐다. 자,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일만 남았다.
나는 퇴사 후의 시간 동안 두 가지의 변화를 시도하기로 한다.
첫 번째는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커리어적 목표가 한 단계 커졌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내가 좋아하는 산업에서 일할 것이라는 가치관은 유지하면서, 그 일의 규모와 역량이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올해는 제대로 준비해서 좋아하는 회사를 가는 것, 그곳에서 전문가로 일할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됐다. 지금이 그 도전을 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다.
두 번째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낯선 환경에 나를 놓아두는 것은 내 삶의 큰 동력이 된다. 돈이 좀 들더라도 일단 공간적, 정서적으로 얽힌 상황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혼자 살면서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나에겐 무엇보다 절실했다. 그랬던 찰나 제주에 살았던 지인 덕에, 집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긴 여행을 하지 못했으니, 나는 제주에서의 시간을 여행하듯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022년의 첫날,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잠시 몸을 담갔던 회사를 나오니 다시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불과 일 년 전 나는 불안정한 상태를 뿌연 안갯속을 걷는 듯한, 두렵고 답답한 것으로 느꼈다. 지금은 이런 상태를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를 나는 듯한, 묘한 해방감과 의지로 느껴진다.
낯선 환경에서 온전히 스스로 꾸려야 하는 내일들은 정말 단 하나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잘 해낼 거라는 단단한 믿음이 이제는 생겼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스물일곱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