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어푸 Jan 29. 2022

아침 1시간의 차이

아침 일곱 시, 잔잔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는 그대로 누운 채 팔을 쭈욱 한번 뻗는다. 아직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딱 1분만 참으면 이 마음도 금세 지나간다는 걸 알기에 꾸물꾸물 일어나기를 택한다. 커튼을 걷어 창밖을 보면 날이 아직 어둡다. 해가 뜨지 않은 아침의 세상을 보면 새삼 기분이 좋아진다. 몇 시간 전 잠이 들던 때와 변함없는 어둠에 안도한다. 눈을 떴을 때 이미 세상이 밝아져 버렸다면,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지 못한 채 똑같은 하루라 여기곤 한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봐야만, 결코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다는 걸 모두가 기억할 텐데.



손목을 쭉 늘려 여러 차례 돌려주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고개를 꾸욱 숙여본다. 그다음 손을 천천히 뻗은 채로 몸을 굽혀 발끝에 닿아본다. 이제 몸이 좀 풀렸다면, 유튜브에 들어가 가장 끌리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잠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엔 귀를 평화롭게 하면서 적당한 리듬이 부담스럽지 않은 재즈만 한 게 없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이불을 정리한다. 이불을 다 접을 쯤이면 커피 포트는 틱- 소리를 내며 따뜻해진 공기를 알린다. 방 안은 따뜻해진 물과 함께 가득 피어 오른 수증기로 다정해진다. 작은 컵에 물을 넘칠만치 따른다. 괜한 카페인이 부담스러울 땐 차 대신 따뜻한 맹물을 마시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 모금 들이키니 몸은 이미 완벽한 아침을 맞을 준비가 됐다.


벌써 절반의 일을 해낸 거다.






이제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노트북에 화면이 켜지는 사이, 스페인어 단어를 외운다. 이따금 단어를 소리 내 중얼거리기도 한다. 각 잡고 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진전을 위해서다.


내가 가장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한 적 있다. 능력 있는 마케터이기도,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는 다능인이기도,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도, 내 이름의 책을 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바라는 나의 미래를 꼽으면 마드리드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무엇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나여서 행복할 수 있는 곳. 누군가는 그곳을 소울 컨츄리라고, 누군가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다. 나는 스페인행을 택할 때마다 "여행이 아니라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그곳에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님에도, 나의 영혼은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레티로 공원 어느 벤치에, 기껏해야 마을 사람들만 알아챌 법한 노비시아도 거리 낙서 한 켠에, 손님 한 명 없는 멋들어진 마드리드 빈티지샵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마드리드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나의 조각들이 있다. 그곳의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이 행복할 수 있다. 태초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스페인어 단어장을 나의 유일한 희망인 양 펼쳐본다. 더 이상 먹고사는 일에, 남들과 같으려는 일들에 밀려 그 꿈을 잊고 싶지 않았다. 궁극적인 나의 삶을 위한 준비는 매일 아침 십 분이면 충분했다.



십 분도 안 걸리는 가벼운 공부를 마치고,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린다. <필타>라는 제목의 문서를 클릭한다. 스크롤을 쭉 내려 새로운 페이지에 오늘의 날짜를 쓴다. 나는 어제 읽은 책을 펼쳐,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필사, 아니 타이핑한다. 필타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글쓰기 연습법이었다. 타이핑은 필사보다 손과 종이에 남는 부담이 확실히 덜했다. 가뿐한 손으로 글을 다시 되뇌며, 내 삶 어딘가에 구절을 남긴다. 이 또한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십 분의 의식이 스스로를 위한 다정한 힘을 잔뜩 만들어,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해준다.


마지막으로 메일함에 들어가 여러 뉴스레터를 확인한다. 마케팅 관련 뉴스레터와 시사 관련 뉴스레터도 있지만 오늘 같은 날엔 손이 가진 않는다. 브리크, 아하, 리릭 가볍게 읽기 좋은 뉴스레터를 먼저 눌러본다. 이 또한 두세 메일만 읽고, 노트북을 닫는다. 오늘 온 메일을 모두 읽어야 한다거나 정해진 개수의 메일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 따위 없다. 별로 끌리지 않는 글이 있으면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야만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조금씩 건드리는 것만으로 삶은 한층 밝아지는 걸 느낀다. 아침의 1시간 동안 대단한 걸 이루지 않는대도, 맑아지는 기분 그거면 충분했다.








작년 새해 미라클 모닝이 트렌드로 떠올랐을 때, 나 또한 대단한 변화를 꿈꾸며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20분 요가, 30분 글쓰기, 책 10장 읽기, 영어 공부 등 하고 싶지만 절대로 하고 싶지 않기도 한, 마음의 짐 같은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건 나를 위한 의식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기분이었고, 하루를 거르면 며칠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시작도 어렵고, 해내기는 더 어려운 무거운 아침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람들이 추천하는 일들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가볍고 짧은' 일들로 아침을 바꿨다. 두 시간이 늦어진 아침임에도 나의 아침은 이제야 나다울 수 있었다.


늦게 일어나 계획한 루틴을 하지 못한 날도, 점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럴 땐 '오늘 하루는 이미 망해버렸다'며 바닥에 누운 채로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뭐를 해도 이미 오늘은 글렀다며, 오늘의 기분을 내일로 떠넘겼다. 겨우 아침이 지났을 뿐인데.


완벽한 때, 완벽한 상황에서야 나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했다. 완벽한 때가 아니라면 이미 망친 기분을 보살필 노력 따위 하지 않았다.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기분이 되었다. 늦게 일어났다고 타박할 필요도 없고, 오늘 아침은 아무것도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 기분을 낫게 할 방법이 있다면 언제가 됐든, 지금 시작했다. 지금이 최적의 시간은 아니라는 우려에, '오늘은 다 지났으니 다음에'라는 핑계에 나의 기분을 방치하지 않았다.


아침의 1시간이 익숙해지고 '나의 기분을 기쁘게 하는 게 뭐가 있을까', 나에 대한 온갖 관심이 생겼다. 이런 변화가 꽤나 반갑다. 완벽한 때에, 할만할 가치가 있는 상황에서야 내 기분을 챙겼던 지난날과는 달랐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저녁이라도, 내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기꺼이 캔맥주를 따고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끝내지 못한 일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자기 전이라도 기꺼이 노트북을 켜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 일을 했다. 귀찮은 마음이 아니라 내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침을 소중히 하는 태도는 하루를 대하는, 나아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했다.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기꺼이.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꺼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한 시간의 기적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