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경험과 능동적 경험
이번 분기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콘텐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백요리사> 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프로그램을 너무 재미있게 봤고, HR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콘텐츠를 통해서 얻는 조직적인 인사이트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 것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프로그램과 등장인물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최근에 흑백요리사와 관련해서 한 칼럼리스트가 쓴 글이 인상깊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글이었는데요, 경험의 수동성과 능동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과 안성재 쉐프가 눈을 가리고 입을 벌리며 음식을 받아먹는 장면이 최상의 수동적 경험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요리가 오면 안대를 쓰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립니다. 사실상 음식을 먹기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 안으로 들어온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면 되죠.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우리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도 극도의 수동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존 듀이는 수동적 경험을 일차적 경험(primary experience), 능동적 경험을 이차적 경험(secondary experience)라고 이야기 하는데, 수동적 경험은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당하는 경험(undergoing)이고, 능동적 경험은 나의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경험(trying)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동적 경험이 주는 재미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결실이 있는 사람, 성취하게 되는 사람, 더 많은 것을 얻어간 사람은 비록 탈락할지라도 고생하며 요리를 하는, 능동적 경험의 100명의 요리사라는 겁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죠. 어떤 사람은 최종 우승의 영예를 가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하며, 하고 있는 사업이 번창하기도 합니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과정중에서 배우고 느낀것이 앞으로 인생을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겠죠. 누군가가 만드는 것으로 부터 얻는 수동적 경험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능동적 경험이 더 오래가는 기쁨라는 점에 많은 동의가 되었습니다.
오늘로서 회사에서 13번째 OKR 리뷰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성과파티'라고도 부르는 리뷰 세션은 한 분기의 OKR이 종료된 후 결과를 리뷰하며 목표를 달성한 팀을 축하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배움이 있었던 팀과 개인의 사례를 공유하며 함께 학습하는 시간입니다. 이 조직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4년 전 이 조직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정말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수동적인 태도로 이 세션에 참여했습니다. 조직의 새로운 변화였던 OKR을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하기 싫어했고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회사와 본부에서 정한 목표를 그냥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해도 감사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회사의 방향성은 확실했고 확신이 있었기에 우리만의 OKR을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고통을 감수하며 어려운 시기를 넘어왔습니다. 이제는 OKR을 우리의 문화로 정착시켰다고 이야기하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리뷰 세션을 하면서 앞에서 둘러보니 모두가 하기 싫다고 이야기 하던 그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동적 경험만을 할 때, 능동적으로 이 과정에 참여했던 분들이 지금 각 팀의 리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을 시간들이지만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회사의 방향에 맞추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나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더 성장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리더들 덕분에 이제는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팀장이 제시하는 것 보다 더 높은 목표를 제안하기도 하면서 이 과정 자체를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구성원들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이야기 하는 능동적 경험의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그 경험을 나눕니다.
업무의 경계를 허물고 적극적으로 협업합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나누고 성장합니다.
능동적 경험을 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이유는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의 환경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오늘 새로운 기술이 내일은 헌 것이 되고 사람과 환경 모두 매일 매일 변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서도 이런 변화의 방향성을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주변 동료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조직 내 인재밀도를 높여줄 수 있는 핵심인재의 역할을 기대 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능동적 경험이 좋은 이유는 주변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된다는 말,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통한 학습과 통찰에 의미를 두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성장의 즐거움도 배로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 24년도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남은 두 달의 기간 동안 나는 어떤 능동적 경험을 통해 성장을 경험하고 싶은지 정리해보며 의미 있는 연말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