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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13. 2023

내고향 정남진, 장흥

어릴 때 살던 고향 이름은 장흥이다. 지금은 정남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장흥 한우, 표고버섯, 키조개 삼합, 물축제 등이 유명하다. 장흥의 일부는 바닷가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살던 곳은 바닷가는 아니다. 늘 넘실넘실 물결이 출렁이던 탐진강이 흐르는 장흥읍이다. 어릴 때, 그곳에서 낮에는 다슬기를 잡았다. 탐진강은 은어가 사는 일급수라 물속 다슬기가 훤하게 보일 만큼 맑았다. 잠깐만 몸을 숙여 강 속을 들여다보면 다슬기를 쓸어 담을 정도였다. 된장을 푼 물에 자주 다슬기를 삶아 먹었다. 


그때의 추억으로 관광지나 유명 산사 입구에서 파는 다슬기를 한 봉지 사면 다슬기 모양새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우리는 다슬기라고 부르지 않고 고동이라 불렀으니 서로 종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 강물에 맨발을 담그고 깔깔거리며 고동을 한가득 담아가고 싶다. 이젠 허리가 아파서, 눈이 침침해서 “아야야”, “어구구” 하면서 금방 물 밖으로 나와버릴 수도 있겠다. 

    

강가에는 크고 작은 조약돌들이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강변엔 천지가 조약돌이라 조약돌을 쌓아 지은 가짜 집에서 호박꽃을 썰어 상을 차리며 소꿉놀이를 했다. 아직 활짝 열리지 않은, 동그랗게 감겨진 호박꽃을 썰어놓으면 예쁜 계란말이처럼 예뻐 보였다. 그 예쁜 모습이 보고 싶어 항상 호박꽃이 주 메뉴였다.  

    

장흥읍엔 야트막한 동네 뒷산 같은 남산이 있다. 봄이면 남산은 벚꽃으로 뒤덮인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단체로 벚꽃 구경을 갔던 게 기억난다. 천지에 하이얀 꽃비가 흩날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갖은 포즈를 잡던 단발머리 소녀들이 거기에 있었다. 낮은 산이라 부담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심지어 중 3때는 영어 과외를 같이하던 친구가 어느 날 미팅 약속을 잡아 왔는데 장소가 남산이었다. 여러 곳 중 굳이 남산이 선택된 것은 그 시절엔 만남의 자리로 꽤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이해 못 할 일이다. 


상대방은 같이 영어 공부하던 남학생이었는데 주변머리가 없어서였는지 나에게는 말을 못 붙이고 먼저 영어 공부를 함께 한 친구에게 부탁 한 거였다. 장흥읍에는 여중학교, 남중학교가 따로 있었다. 남녀공학이 아니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중년이 되어 남의 동창 모임에 끼여 자리한 적이 있다. 어찌나 화기애애하고 친하든지, 남녀가 이렇게 가깝고 구수한 사이일 수도 있구나 처음 느꼈다. 그런데 그 비결이 초중고까지 남녀공학으로 함께 다닌 것이었다. 일찍부터 남녀 내외를 해 버린 나는, 나이를 핑계 삼아 털털한 말투로 일부러 친하려 해도 그게 잘되지 않는다.


 마침 내일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고향에 모여 동창회를 하는 날이다. 단톡방에 올라온 글을 보며 내 마음도 잠시 설렁거렸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거국적인 동창회인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일에 불철주야 몰입하고 있는 나는 물론, 참석하지 못한다.  

    

장흥읍은 오일장이 서는 곳이다. 어릴 때는 항상 장날만 기다렸다. 그날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았다. 지금 와서 기억해보면 마치 장터의 모습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소담한 무대 하나가 마련되어 있다. 토요일이면 그 무대에서 주로 어르신들이 옛 노랫가락을 뽐내신다. 장흥에서 현재 102세로 장수를 누리시는 친척 어른은 85세 되던 해에 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시고 세 살 어린 연인을 만나 재혼을 했다. 토요시장은 낭만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일 친구들은 그 토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나 보다. 어르신들만 서는 장소에, 이제 우리가 함께 어울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그런 나이가 돼버렸다.    

  

정남진, 장흥한우, 토요시장, 표고버섯, 물 축제 등의 지역 마케팅으로 내 고향 장흥은 새롭게 태어났다. 탐진강의 물은 이제 그렇게 넘실거리지도 않고 조약돌은 사라졌다. 남산에 벚꽃은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가버린 사람도 있고,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다. 세월과 함께 고향의 모습은 변해도 일곱 살, 열 살, 열다섯 살의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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