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학년 체육대회가 있었다. 요즘은 전체 학년 체육대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주간에 학년별로 날을 잡아 실시한다. 우리 1학년은 그 주간 금요일이었다. 한 주 내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다른 학년의 함성에 지쳐갈 즈음에 1학년의 날이 됐다. 종목은 각각 학급의 선생님들이 한 코너씩을 맡아 강당과 교실에서 운영했다. 운동장에서는 동시에 5학급이 참여하여 이어달리기와 개인 달리기를 했다.
학급의 담임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운영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학년의 부장 선생님이 아이들만 줄 서서 다니면서 이동하게 하고 각 교사가 코너를 맡아 운영하자고 했다. 나만 그 의견을 반대했다. 반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활동 모습도 보고 사진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각 반을 찍어주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는 부장 선생님이 다른 반 아이들이 어떤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반은 몇 번의 특별 수업에 들어오신 외부 강사들의 입을 통해 지나치게 활발한 남학생들 때문에 이미 소문이 나 있다. 너무 아이들이 어려서 철이 없고 말을 안 듣는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하루라도 떼어 놓으려니 맘이 불편했다.
만사를 대비해서 질서와 줄서기, 그리고 각 게임에 응할 때의 팀을 나눠주었다. 오후에 운동회가 다 끝나고 만났을 때 우리 아이들은 서로 나에게 이르기 시작했다. 그 말에서 나의 당부와 가르침은 묵사발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누가 다치거나 크게 불편한 일이 안 생긴 걸로 위안 삼았다.
경쟁게임을 하면 저학년은 특히 행동이 느리거나 굼떠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행여 자기 편이 그 아이 때문에 지는가 싶으면 성정이 조급하고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은 못 참고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노발대발한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학습 속도의 차이와 서로 다름은 당연하다는 것을 일러주곤 한다. 1학년일수록 한 시간의 수업에서 배우는 학습 속도가 너무 차이가 나므로 꼭 알려줘야 한다. 창가에 각자 물에 담긴 고구마를 키우고 있다. 한날한시에 키우기 시작했어도 싹이 나는 순서가 제각각인 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자기들을 늘 고정적으로 품어주는 어른이 곁에 없으면 아이들은 일시적인 정서 이탈을 일으킨다. 그날도 반에서 제일 생일이 느린 12월생들 둘이 한 아이는 늦게 행동한다며 타박하고 또 한 아이는 그래도 자기가 할 거였는데 친구가 못하게 했다고 나에게 씩씩거리며 말을 했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아이들 눈빛만 보고도 알아서 판을 바꾸니 싸울 일도 안 생겼을 것이다. 아쉬웠지만 다 모든 일은 공부가 되는 것이니 아이들의 분노를 잠재우며 다독거려 주었다.
운동장에서 하는 이어달리기는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우리 반은 평소에 여러 반을 들어가시는 교담 선생님이 제일 어리다고 하고 체구도 작다. 반을 나눌 때 생일 순으로 나누는데 생일이 늦은 아이들이 더 많이 있는 모양이다. 개인 달리기를 할 때도 단연코 꼴등이 많이 나왔다.
이어달리기는 승부 게임인데, 일단 기는 살고 봐야지 싶어 번호순으로 하자는데 그냥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우리 반의 개구쟁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니까 달리기도 잘했다. 걔들이 한 번씩 속도를 내주는 구간에서만 겨우 따라잡았다. 제일 말썽을 많이 부리고 말을 안 들으면서도 그 속마음이 보이는 A군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널 마지막 선수로 세울게. 실력 한 번 확실히 보여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A군이 바톤을 받았다.
냅다 달리는 우리의 A군! 적토마가 따로 없었다. 앞서던 선수를 확 제치고 일등으로 달려왔다. 거의 다 골인 지점이 다가올 즈음, 녀석의 표정에서 힘에 부쳐도 뛰고 있음이 보였다. 전날 장염으로 학교를 안 나왔던 우리 A군은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였던 거다. 마지막 통과지점은 더 가야 하는데, 전날 결석으로 연습에 빠져 경험이 없는 A군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멈추었다. 1등으로 들어오고 있던 차였다. "A야 저기까지야!" 다시 10미터 정도 남기고 뛰었다. 우리 반은 다섯 반 중 2등을 했다. 마지막 선수인 A군을 꽉 안아주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게 기특하고 짠하기도 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다.
다음 주 등교한 A군은 내가 한 애정 표현 때문에 기고만장해져서 화요일까지 말을 안 듣고 삔들거렸다. 인내와 잔소리와 은근함으로 겨우 수요일에야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상황에 따라 절제와 마음 내보이기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또 한 번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