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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11. 2023

미리 준비하는 마지막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건 축복일까, 고통일까?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개인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원래 목이 약했는데, 이상하게 감기가 낫지 않고 한 시간의 수업을 버티지 못할 만큼 체력이 고갈됐다. 남편의 부도와 그 뒤 처리로 약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낼 때였다. 스트레스의 무서움을 그때 알았다.   

   

감기 치료만 받고 다니는데 어느 병원에서 갑상선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암이라고 했을 때 그 충격은 어마무시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삼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몸이 더 아파졌다. 다른 부위 암에 비해 회복력과 결과 유지력이 좋아도 어쨌든 ‘암’이라고 하니 생각지 못했던 사고를 만난 것 마냥 당황스러웠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비로소 죽음을 대면해 보았다. 무엇보다 세 아이가 눈에 걸리면서 가슴에서부터 눈물이 잡혀 왔다. 또 남편은 어떤가. 그 또한 나이 든 아이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목표를 자립과 독립에 두고 키웠다. 바람대로 잘 자라주었다. 그래도 남기고 떠날 생각을 하니 못다 준 애정과, 함께 하지 못할 시간에 대한 미련이 폭포처럼 밀려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 몸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좋다는 것만 찾아 돈을 쏟아부우며 유리공주처럼 살고 있다. 11년이 훌쩍 지났다. 언제든지 떠나도 미련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학창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일기장, 편지들, 쌓아놓은 과거 흔적들을 그때 다 불태웠다. 남편 사무실 앞 큰 빈 드럼통에 박스째 들고 가서 태웠다. 그것을 태운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떠나도 괜찮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내 흔적들을 칠칠하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떠남을 위해 디지털 장례식을 필히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스마트폰에 담긴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제는 폰이 개인의 강력한 메모리 도구다. 메모, 갤러리, 검색 등 수많은 자신의 자취를 가장 가까운 가족이 보면 제일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필히 디지털 장례식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떠남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암 선고를 받으며 생각해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난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 일본에서는 초로에 가까운 노년층들이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한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결혼식처럼 가까운 사람과 가족을 불러 미리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한다. 아쉬움 없이 갈 길을 닦는 작업이다. 죽음을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죽음을 위협적으로 여기는 것은 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평소 생활을 심플하고 미니멀하게 추구하면 된다. 그래도 어떤 이별이건 이 세상에 이별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항상 잘한 것보다 못 한 것이 걸리는 법이다. 부족하지 않게 주변에 표현하고 사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길이다. 표현력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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