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지안 Jun 10. 2023

풋풋 말랑 쌉싸름 첫사랑

어렸을 적 우리 집에 오신 어른들이 꼭 하는 한 마디가 있다. "아가, 넌 뭔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있냐?" 별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자주 그런 말을 들었다. 내 표정이 조숙했었나 보다. 집에 있는 어른 책들을 마구 읽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내가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동안이란 소리를 들으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생각이 조숙해서 그랬는지 나는 첫사랑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소풍을 갔을 때 각 반 반장, 부반장 나오라 해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학급은 총 3학급이었다. 걔는 옆 반 아이였다. 내 옆에 걔가 서게 되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내 눈에 쏘옥 들어왔다. 원래는 우리 반 남자 반장 아이가 1학년부터 한 반으로 올라와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난 여지없이 그날부로 갈아타기를 해버렸다.   

   

소풍을 갔다 와서 옷도 안 갈아입고 친구를 불러내서 그 아이가 어디 사는지 알아냈다. 걔가 사는 동네까지 갔다. 그렇게 걔를 한번 보고 가려고 그 동네 앞을 서성이다가 씻지도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고 찾으러 다닌 엄마 눈에 띄게 되었다. 엄마한테 야단맞고 질질 끌려서 집에 갔다.      

2학년 2학기 때부터 고전읽기반이 생겨서 반에서 두 명씩 하게 되었다. 오매불망 소원한 덕분인지 물론 그 아이도 함께였다. 맨날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시험 보고 독후감을 쓰는 거였다. 책 몇 권을 돌려가며 반복해서 보니까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시험 보기 전에는 선생님이 며칠간 모아놓고 스터디를 했다. 가끔 각자 집에 돌아가며 모여서 책 공부를 했다. 6학년 때까지 고전읽기반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보고 전교생 앞에서 상을 주는데 나는 맡아놓고 1등을 했다. 그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더 열심히 했다. 걔는 날 보고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서울에 사는 고모가 멋쟁이라서 신기한 필통이나 문구류 등을 사서 보내주었다. 난 그 멋진 것들을 학교에 갖고 가서 자랑만 실컷 하고 걔한테만 그중의 한 가지를 주었다. 나는 남이 다 알게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나도 나름 남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걔 앞에만 서면 부끄럼쟁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학교에 올리비아 핫세랑 똑같이 생긴 허여멀건 예쁜 여자애가 광주에서 전학을 왔다. 5학년 때였다. 그 아이랑 올리비아가 한 반이 되었다. 내 앞에서 항상 우유부단하던 걔가 올리비아 핫세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여자인 내가 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생긴 그 아이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걔가 날 스승님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고전 읽기나 열심히 했다.   

  

6학년 때는 그 아이랑 같은 반이 되었다. 한 달도 못 지나서 걔는 광주로 전학 갔다. 자기네 가족은 시골에 있는데 그 아이만 전학을 갔다. 그 집 부모님의 교육열이 대단하셨다. 걔네 집 삼 형제가 다 최고 학교를 나왔다. 그렇게 떠나보낸 것으로 첫사랑은 싱겁게 끝났다.     

 

중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선생님을 좋아해서 편지를 쓰고 난리를 치는데도 난 도무지 누구에게도 연정이 생기지 않았다. 하도 얘들이 철 가슴이냐고 놀려대서 나도 누구 있다며 그냥 그 아이로 방어막을 쳐 놓았다. 그랬더니 나에 대한 호기심은 줄어들었다. 그때가 중3이었는데 오히려 뒤쪽에서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광주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시골로 전학을 와 혜성처럼 등장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미모와 매력으로 시골의 남학생들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내 친구의 마당발이 어디까지 펼쳐졌는지 중3 겨울방학 때 광주에서 첫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쁨도 잠시 부끄러워서 죽을 맛이었다. 난 장난으로 아이들 입막음을 한 것뿐인데, 내가 떠난 이몽룡 애타게 그리워하는 춘향이가 된 것이다. 상황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5학년 때 올리비아 핫세에게 밀려 쓴잔을 마신 기억이 무의식에 남은 탓인지 한 마디로 이건 아니다 싶고 찜찜했다. 그래서 만나러 안 갔다.    

 

매력 만점 여자 친구랑 광주의 한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 내 친구는 비너스의 후예인가 싶을 정도로 청춘사업에 몰두했다. 내가 시키지도 않은 그 아이 소식을 물어다 나르면서 또 어느 날 약속을 잡아 왔다. 결국 만나러 나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친해지지 않으면 그다지 말이 없는 나는 서로의 공부에 대한 말만 하고 헤어졌다. 그 뒤로 그 아이가 동생들과 함께 사는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때 나는 또 다른 여자 친구와 자취하고 있었다. 혼자 가기가 머쓱해서 친구를 데려갔다. 내 친구와 첫사랑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사이가 아니라 처음 본 자리였다.   

  

내 여자 친구는 유머가 많은 재미있는 아이였다. 내 친구의 활약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 뒤로 첫사랑 그 아이가 우리가 사는 곳에 오거나 우리가 가거나 했는데 항상 친구를 데리고 갔다. 걔도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한 아이와 친하게 연락하고 지낸다며 다른 친구를 불러냈다. 나도 아는 아이였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꼬인 사이가 된다. 그 초등학교 친구가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싫다고 대놓고 말해도 편지를 보내며 아랑곳하지 않고 기죽은 표정으로 나를 찾아 다녔다. 이런 일들이 귀찮아졌다. 나는 첫사랑 그 아이에게 다음에 대학 가서 보고 공부나 하자고 했다. 우리는 만남도 잠시 그렇게 헤어졌다. 그 뒤로 내 여자 친구는 한 번씩 우울 모드에 빠지곤 했다. 워낙에 발랄하고 재미있는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헤어진 그 아이는 어쩌다 한 번씩 편지와 음악 테잎을 보내왔다.    

  

우리는 대학에 갔다. 나만 지방대고 걔랑 내 여자 친구는 서울로 갔다. 때때로 학보랑 카드를 과로 보내왔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시골에 내려온 첫사랑 그 아이가 내일 만나자고 했다. 약속했는데 서울에서 방학이라서 내려온 함께 살던 여자 친구가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단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내 친구가 말했다. 내 첫사랑을 자기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라고 했다. 알고 있었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놀라지도 않았다. 내 마음도 예전 마음이 아니라며 걱정하지 말아라, 그 아이랑 난 친구일 뿐이라고 했다. 둘은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서울에 있으니 두 번째 올리비아 핫세를 만난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바로 백기를 들었다. 다음날 그 아이를 만났는데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아 있어 불편했다. 결국 그 아이를 멀리 떠나보내는 쓸데없는 말만 하고 집에 돌아왔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알맹이는 하나도 없고 주변 호사가들의 등쌀에 밀려 요란한 소문만 내고 끝났다. 그 후, 친구는 그 아이랑 좋은 친구 사이였을 뿐 바라는 연인 사이는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남편의 작은 눈은 사실 첫사랑 닮은 꼴이다. 어디 하나 맘에 든 구석이 없는 남편을 내가 왜 자꾸 봐주는가 쳐다보다가 발견했다. 결혼을 말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사실 나는 첫사랑을 맘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 때 잠시 좋아했던 법대생도 짝 찢어진 작은 눈이다. 첫사랑의 눈이다.     


큰아들만 보면 내가 "나의 이상형, 나의 이상형" 이러며 쫓아다닌다. 내 눈에 엄청 매력적으로 보여서다. 눈이 자기 아빠 닮아서 작다. 다행히 사람들이 눈동자는 나를 닮아서 뭔가 아빠랑은 다르다고 한다. 어쨌든 작은 눈이다. 첫사랑의 눈이다. 첫사랑과는 스토리 없이 일찍 손을 놓아서인지 못다 한 이야기처럼 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다. 대신 언제든지 돌아보면, 달콤하게 환대해주는 남편과 큰아들로 채우며 산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의 김치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