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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16. 2023

우유변란

초등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한다. 물론 교사들은 식대를 달마다 내고 먹는다. 아이들은 급식 시간을 많이 기다린다. 그날의 메뉴에도 민감하다. 아침을 안 먹고 오는 학생도 있다. 요즘은 맞벌이하는 엄마들이 많아서인 듯하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간식 없이 학교에 오랜 시간 묶여 있기는 힘들 것이다. 한창 성장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우유 급식을 원한다. 코로나 시기에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가 올해부터 다시 우유 급식이 시작되었다. 부모님들은 그거라도 아이가 먹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문제는 부모 바람과 달리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유 빼돌리기를 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 주변 정리를 하면 책꽂이에 숨겨진 우유, 복도 창밖 난간에 놔둔 우유가 있다. 그러다가 아래층 차 세워둔 곳으로 우유가 떨어져 승용차 유리창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우유가 안 남아 있게 하려고 교사들도 먹는 걸 지켜보거나 갖가지 노력을 한다.  

   

아이들은 우유를 먹기 싫어하는 이유로 먹으면 배가 아프고 냄새가 싫어서라고 한다. 한국인들에겐 우유를 소화 시키는 효소가 없어서 더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먹기 싫으면 엄마한테 말하고 우유 급식을 중단하면 된다. 하지만 한 학기별로 주문하기 때문에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냥 한 학기는 억지로 먹거나 집에 가져가야 한다.  

   

이런 행동은 5~6학년 고학년에서 많이 나타난다. 1학년일 때는 아직 순진한 시기라 그래도 잘 먹는다. 올해 아이들은 다르다. 장염 환자가 몇 명 발생하면서 아직 덜 회복된 사람에겐 우유를 가져가게 했다. 아이들은 금세 따라 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에, 생활 흐름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염이 원인이 되어 우유를 착실하게 먹는 습관이 우리 교실에서 깨져 버렸다.    

  

하교 뒤에 책꽂이나 교실 곳곳에 우유가 한두 개씩 보였다. 그 뒤 서로 배 아프다고 해서 학부모님들께 알림장으로 알려드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이와 잘 대화하고 우유를 싫어하면 억지로 먹이지 마시길 권해 드렸다. 더구나 우유를 먹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다른 일이라도 보느라고 잠시 우유 간섭을 안 하면 먹다 책상에 놔두고 장난을 치다 또는 자기 혼자의 실수로 우유를 꼭 엎지른다. 부모와 아이가 소통이 잘되어 이제 교실에 남겨진 우유는 없겠거니 생각했다. 순진한 건 나였다. 그래도 우유가 꼭 하나는 남더니 어제는 급기야 책꽂이 책들 사이에 꽁꽁 세 개나 숨어 있었다. 좋은 행동은 따라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나쁜 짓은 전파력이 빠르다.     


오늘은 우유를 나눠주기 전에 고학년 에게나 사용하는 방법을 해 보았다. 네임펜으로 번호를 우유 곽에 쓴 다음에 주었다. 엄마 허락을 받은 사람은 집에 가져가라고 했다. 1교시 끝나고 우유를 나눠주고 2교시 끝나고 가방에 챙긴 사람과 우유를 다 마신 사람을 체크했다.     


2교시가 끝나면 아이들 놀이 시간으로 20분이 있다. 중간 놀이 시간이다. 한참 놀고 이제 3교시를 막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책꽂이에 또 우유가 있다는 것이다. 번호도 지워져 있었다. 우유를 냉장고에서 가지고 온 뒤라 물기가 겉에 있어 문지르면 쉽게 번호를 지울 수 있었다. 아까 표시해둔 것을 보며 가방에 우유가 있는 사람은 가방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나와서 우유를 보여주는데 번호가 쓰여 있다. A군은 자기 우유가 사라졌단다. A군 번호의 우유만 없다. 자기가 저기에 둔 것은 아닌데 자기 우유도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통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이렇게 여러 가지 행동에서 잡아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다 똑같다. A는 특히 심하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가슴으로 알지 못하는 때라서 더 그렇다.   

   

솔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전체를 상대로 훈계하고 내일 지켜보겠다고 했다. A군에게는 별도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은 속아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단다.”라고만 말해주었다. 뭔 말인지 모를 것이다. 그 엄마와 통화했다.    

  

도덕성은 가정에서 인성교육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내 생각이다. 아이의 롤모델은 당연히 부모다. 그런 말을 학부모님께 했다. 이제 여덟 살일 뿐이니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기이다. 더 신경 써 주시라고 했다. 부모님은 학기 초에 나의 전화를 받은 뒤로 자기 가정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학교에서도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 나보다는 부모의 수고로움이 갑절로 필요한 상황이다. 아이들의 변화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뭔가 그 가정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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