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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19. 2023

비 샤워

비 내리는 날이다. 기분이 좋다. 나는 햇빛 찬란한 맑은 날도 좋아하고 오늘처럼 이렇게 비 내리는 날도 좋아한다. 아니, 비를 사랑한다. 비가 세차게 투둑 투두둑 내리는 소리는 하염없이 들어도 더 듣고 싶을 정도다. 창가에 부딪혀 미끄러지는 빗방울들은 또 왜 그리 이쁜가. 온 세상이 비에 씻기며 물 맛사지 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어렸을 때부터 비를 좋아했다. 밤늦게 비가 내리면 일부러 우산을 쓰고 나가 골목길을 걸으며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옷이랑 신발도 젖고 후텁지근해서 다들 싫다고 한다. 난 젖어도 좋다. 갈아입고 씻으면 되는 건데 빗소리와 그 풍경이 주는 힐링에 비하겠는가.    

 

점심시간이었다. 학교의 점심시간은 50분이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나면 30분은 편히 놀 수 있는 시간이다. 학교마다 리더인 교장 선생님의 방침이 다르다. 어떤 학교는 아이들이 복도에 나오는 것까지 제어를 일일이 한다. 하교 시에 교장실 가까이에 있는 계단 내려갈 때 아이들 소리가 요란하다며 빙 둘러 다른 곳을 이용하라고 까지 한다. 당연히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이나 교실 밖에서 아이들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올해 새롭게 옮긴 이 학교는 교장 선생님이 자애로우신 것 같다. 아이들이 마음껏 점심시간에 뛰어놀게 한다.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해주시는 것이니 감사한 일이다. 비가 내리는 이런 날도 우리 아이들은 우산을 가지고 밖에 나갔다. 잠시 후 여자아이들이 큰일이라도 난 듯 나에게 말을 한다. "선생님! 남자아이들이 밖에 비가 많이 오는데, 비로 샤워하고 있어요" 기발한 이 표현에 칭찬해주고 싶었다. 잘못하면 그 행동을 독려할 수 있게 들릴 수 있으므로 꾹 눌러서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그때 주인공 남학생들이 들어왔다. 머리는 왕창 젖었다. 상의 윗부분도 살짝 젖어 있었다. 속마음은 '비 좀 맞으면 어때?'이지만 선생의 위치가 그럴 수가 없다. 또 이 아이들은 1학년 어린애이다. 쉽게 감기에 걸릴 수 있다. 할 수 없이 선생 자격으로 야단을 쳤다. 

    

내 마음은 비를 맞고 개구쟁이처럼 들어 온 이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비를 보고 비 맞이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다. 다들 모범적인 생활에 세뇌되어 아니라고 하는 것에는 발걸음도 안 한다. 그 틀을 깨고 빗속에서 춤을 추며 샤워하고 온 이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학부모님들께 내 속을 들키면 당장이라도 교실에 쳐들어올 일이다. 요즘의 초등교사는 학습 지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돌봄까지 할 것을 요구받는다.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므로 주의를 주고 교실 안 에어컨을 꺼버렸다. 늦은 오후가 되니 비도 그쳤다. 나무들의 푸르름이 기지개를 켜듯 잔뜩 올라와 더 푸르러 보였다. 우리 아이들도 아프지 않고 별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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