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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20. 2023

내 얼굴이 그 얼굴

얼마 전에 줌으로 쇼츠 영상 만들기 강의를 시작했다. 수업하기 전에 영상 만들기 자료로 사용하려고 여기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괜찮은 이미지를 찾아보았다. 한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노년의 두 부부가 주름을 얼굴에 가득 실은 채 멋진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도 청운의 꿈이 있던 시절엔 그런 사랑을 꿈꾸었다. 부부로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사랑이 우정이 되었고 그 우정은 최근에 너 따로 나 따로가 되었다. 그 따로따로인 우정의 삶도 나름 괜찮다. 오히려 서로를 더 존중해 주는 셈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오케이 해 준다. 소싯적에는 골프를 갔다 오면 후다닥 빨래를 함께 돌려서 내가 모르게 하려다 들킨 적이 많다. 자기만 놀고 오니까 내가 잔소리를 해대서 이다. 그 뒤로 운동 젬병인 내가 뒤늦게 골프에 빠져 잔소리는 쏙 들어갔다. 비로소 역지사지가 된 것이다. 오히려 응원한다. 그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이제는 긍정의 눈으로 본다. 이 마음 씀의 크기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붙어 있을 때는 발현되지 않았다. 되려 상대방을 불편하게만 했다. 친구들과 3박4일 중국 여행 갔다 왔을 땐 도착해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두 시간 동안 밖에서 싸웠다. 집에 빨리 가서 얘들이 보고 싶어 죽겠는데, 핸드폰이 연락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되고 저 망할 인간을 내가 왜 만났나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아보니 그것도 사랑이었다. 비록 성숙하지 못해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혀가며 살아왔어도 서로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부딪힘도 있었다.    

  

그 눈길을 거둔 지 오래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돌본다. 나를 돌보면서 그에 대한 존중의 마음도 조금 커졌다. 한걸음 뒤에 서서 보면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된 이 관계가 좋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서서히 성숙해진 것 같다.     


30대에, 40대에, 노년에 하는 사랑이 다른 것 같다. 당연한 이치다. 늘 30대와 똑같다면 앙상한 뼈와 퀭한 눈만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달라진 건 없다. 애정의 기차에서 좌석만을 바꿔 앉은 것이다. 바깥 풍경이 다르게 보이니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도 넉넉해졌다.     


나는 수줍음도 많고 할 말도 다 안 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내게서 변화를 끌어낸 사람도 남편이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남편은 항상 칭찬, 인정, 존중으로 나를 대했다. 


이마가 넓어서 늘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는 나에게 이마가 예쁘다고 해서 확 뒤로 머리를 다 젖힐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대학교 시절 교생실습을 준비할 때 수업 시연을 지켜본 뒤에 두고두고 그 수업을 칭찬했다. 결국 나는 중년이 되어 교사가 되었다. 끄적끄적 내가 쓴 글을 보고서 칭찬을 해대서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 작은 불씨가 내 안에서 내내 함께 살았다. 그리고 지금 노년의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내 곁에 있었고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본 사진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둘은 얼굴의 주름을 잘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부러움에서 쳐다보았던 사진 한 장,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얼굴이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별 차이는 없으리라. 이 정도 함께 살면 상대방의 얼굴에 나의 얼굴도 같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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