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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n 21. 2023

짜장면 냄비

중국 음식 하면 으레 짜장면부터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실상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그 토대는 ‘자장멘’ 이라는 산둥반도의 가정식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 과정이 변형되어서 아예 한국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뭐 먹고 싶냐 물어보면 맨날 짜장면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감기에 걸려 시들할 때도 엄마가 나중에 짜장면 사 준다고 그러면 밥을 먹었다.     


중학교 1학년 막 입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지만 소읍이다. 마치 도시의 중심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동네처럼 바글바글 사람은 없어도 큰 병원, 큰 가게, 식당, 약국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아프다고 바로 병원을 찾아가는 시절은 아니었다. 밤에 배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소화제 좀 주고 엄마 손은 약손하며 문질러 주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는데 다음 날 학교에서 부터 배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집에 와서도 복통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내가 펑펑 아프다고 우니까 엄마가 나를 들쳐 업고 가서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때 내가 사는 곳은 개인병원은 여러 곳 있어도 종합병원은 없었다. 원장 선생님은 퇴근하시고 동네에서 자주 뵙는 당직 선생님만 계셨다. 진단 결과 맹장이 터져 급성복막염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날 밤 바로 수술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음식을 잘 안 먹고 입이 짧아서 몸이 약했다. 갓난아기 때도 잘 울지 않고 보채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기가 안 먹으니까 엄마 젖을 짜서 다 버릴 정도였다. 자라면서 툭하면 코피를 쏟고 비실거리니까 맨날 엄마는 첫 아이라 잘 모르고 억지로라도 젖을 먹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다고 자책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식구 중에서 나만 키가 작다.    

 

약하고 어린 몸에 큰 수술을 했으니 빨리 회복이 될 리 없었다. 회복 자리에 좋다는 음식을 해서 안 먹으면 다 나으면 짜장면 사 주신다고 달래셨다. 어른들 음식이라 여간 먹기 어려웠다. 짜장면을 그리면서 참고 먹었다.     

드디어 퇴원하고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날이다. 왜 그런 날은 기다릴수록 더디게 오는지 모른다. 막상 식당에 가니 짜장면 냄새가 마구 유혹하는데도 거기서 먹기가 싫었다. 식당에서 노란 양은 냄비에 짜장면을 담아 주었다. 마침 장날이라서 엄마가 나만 데리고 가줘서 완전 더 신이 났다. 북적대는 장터를 지나 장 구경을 하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가 들고 가신다는 냄비를 극구 고집부려 보물 감싸듯이 내가 들었다. 요즘은 그런 장날의 풍경은 사라지고 없다. 그 옛날엔 마치 잔칫집처럼 요란하였고 어디서 울리는지 풍물 소리도 항상 한 가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잠시 관심을 딴 데 준 사이에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탁 부딪쳐서 냄비가 “팍”하고 땅에 떨어뜨려졌다. 내 짜장면이 그대로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바닥의 흙이 금세 짜장면을 감싸 안아버렸다. 

또 한 번 코를 건드리는 짜장면 냄새가 눈물하고 섞어졌다. "엄마아!" 앞서가던 엄마가 뒤돌아보셨다. 장바닥에 앉아 물건 파시는 분들이 치울 종이인가를 주셨던 것 같다. 엄마는 급히 치우고 그냥 집으로 전진하셨다. 나는 엄마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린 게 있어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오매불망 나의 짜장면은 그렇게 날아갔다.  

   

그렇게 좋아하던 짜장면도 나이가 드니 소화장애니, 밀가루 음식이니 건강의 코드블루에 걸려 그다지 즐기질 못한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니 오늘 저녁엔 모처럼 배민에서 짜장면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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