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keep 메모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 폰 앞 화면에 메모창으로 걸어 놓고 아무 때나 글을 쓰고 별도의 저장 없이 나올 수 있어서 좋다. 중간까지 글을 쓰고 다른 일로 바쁘게 보내다 짬 나면 툭 클릭해서 글을 쓰고, 운동할 때는 말로 녹음하면서 글로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 물론 발음이 부정확하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말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쓴 글을 복사해서 옮기면 된다.
며칠 전에 엄마에게 말대답을 했다. 마음이 불편했는지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옛날이야기를 썼다. 막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한 바가지를 쓰고 나서 내가 너무 대담해진 것 같아서 잠시 주춤거렸다. 제목을 생각하면서 전체 복사를 건 채 스마트폰을 들고 기지개를 켰다. 이게 웬일인가, 폰을 내렸더니 전체 내용이 다 지워져 버렸다. 나중에 아들 말을 들으니 그때 바로 붙여넣기를 실행하면 됐다는데 난 생각 못 하고 날려버렸다.
시원섭섭했다. 내가 약간 주춤하며 망설인 그 에너지가 작동했다는 우주 차원적인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잠깐 의도만 가져도 뭔가 그 일이 실행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건 꼭 되어야 해 하며 의지와 결심을 다지는 일은 오히려 잘 안되며 꼬이고 질질 끌기까지 한다. 그래서 의식의 순수함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생의 태도』를 읽고 웨인 다이어에게 반해서 산 책 중 『의도의 힘』이 있는데, 거기에 '나의 자유 의지가 의도의 힘과는 모순되는 파트너'라는 구절이 있다. 그 문장의 뜻을 조금 이해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운동이나 무용할 때, 선생님들이 꼭 하는 한 마디는 "힘 빼라"이다. 희한하게 힘을 빼면 자세도 좋아지고 생각보다 더 많은 거리를 낼 수 있으며, 또한 춤을 출 땐 춤 선도 가뿐히 예쁘게 나온다.
이 말은 정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실현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불신과 두려움이 커지면 자아 의지를 더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한 자신을 믿고 내려놓는 편안한 마음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될 것이다. 의심이 없다면 웨인 다이어의 말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이미 된 것처럼 스스로를 대하라"는 마음의 자세가 될 것이다. 믿는 것은 힘을 빼는 것이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이다. 세상 사람을 모두 속인다 해도 속일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 자기 자신이다. 자아가 확실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일상을 살아 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요즈음 여기저기 글을 읽다 보면 자주 눈에 뜨이는 단어가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믿고 어떤 의도를 갖는 데에도 역시 예술가의 시선이 필요하다. 상상하고 미리 만들어내는 머릿속 그림이 있을 때, 의도의 힘이 얹혀져 현실로 구체화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때 욕심내거나 더 잘하기 위해 용을 쓰면 오히려 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힘이 잔뜩 실리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는 순리대로 흐르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내 마음이 순리를 따르게 설계하며 나아가야 한다. 하는 일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최선을 다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말 것, 사랑하고, 친절하며 조화로운 본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연에 가깝게 다가서는 태도이다. 내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나 부조화가 없어야 한다. 생각대로 살고 행동해야 의도의 힘이 순수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현실 생활에서 이런 평화로움을 취하기엔 어려운 국면들을 많이 만난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들이 명상이나 마음 챙김을 하며 자신을 자연의 질서 속에 놓으려고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살고 싶다. 걱정이나 두려움으로부터 마음을 멀리 던져버리고 평화로움과 자연의 풍부함이 이미 내 것이라는 믿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그런 믿음은 세상을 향해 저항하지 않게 되니, 억지로 힘을 주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의도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이다. 내가 채우려 하지 않아도 의도의 힘이 채운다. 나는 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