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가장 아끼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1학년 때 한 반이었다. 그 무렵 자취하던 곳과 그 친구 집이 가까웠다. 하교를 함께 했다. 날마다 같은 길을 걸어가며 친해졌다. 자취하는 나를 친구 부모님까지 따뜻하게 잘 챙겨주셨다.
내 친구는 못 하는 게 없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다. 총명하고 감각이 있는 아이였다. 난 성적으로 한 번도 그 친구를 이겨본 적이 없다. 내 친구는 나이 든 지금까지도 나를 보면 멋지다고 하고 문자로도 그런 표현을 해서 응원해준다. 성품도 겸손하다. 내가 보기에 흠결이 없는 친구다. 그런 사람이 내 친구라서 더 자랑스럽다.
대학 시절에 갑자기 학교를 떠나 한 달 반 만에 돌아와 휴학했다. 그때 내 친구가 나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내가 너를 찾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아니?", "네가 사라졌는데도 너 찾을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은 니 친구도 아니다. 사람 보는 눈을 길러라." 아주 원색적으로 화를 냈다. 내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나와 친한 또 다른 친구를 싫어했다. 그 친구는 겉이 화려하고 남학생을 너무 많이 알고 다닌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친구는 항상 누군가와 연애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날 찾을 틈도 없을 터였다. 연애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 이해할 수 있다. 그 시기에도 친구가 보이면 사랑이 덜 여문 것이다.
내 친한 친구는 그렇게 나에게 애정을 준 귀한 사람이다. 그 친구는 휴학한 나보다 빨리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이 됐다. 대학에서도 여전히 공부를 잘하더니 성적순 발령으로 서울에 있는 중학교 국어 교사로 갔다. 그 친구가 떠난 후 외로워졌다. 사람을 좁고 깊이 사귀는 내 성품에 그렇게 마음을 오픈할 친구가 없었다. 서울로 한 번 떠난 친구는 거기에서 남친을 만나고 결국 서울에 뿌리를 내렸다. 전화도 점점 자주 안 하게 되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얼굴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항상 어제 만난 사이 같다. 고등학교 1학년 그 짧은 시간을 함께하고 40년이 넘은 시간을 서로 신뢰하며 애정한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를 퇴근 후 만나면서 근사한 곳에 데려가지 못했다. 머리에 갈 만 한곳이 들어 있지 않았다. 시간 약속은 했어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직장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추가로 진행하다 보니 생각 용량이 부족했다. 최근 내 생각은 항상 일과 관련되어 있다.
친구를 태우고 커피숍을 찾아 돌아다니다 돌고 돌아 친구를 처음 태운 친구의 친정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친구가 낮에 본 그럴싸한 커피숍이 있다고 해서다. 가긴 했으나 미안했다. 좋은 장소로 친구를 데려갈 생각까지 하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긴 이야기를 끝낸 후 저녁을 근처에서 먹었다. 친구는 속이 추운지 따뜻한 국수 국물을 먹고 싶어 했다. 주문받은 한참 뒤에야 국물이 떨어져서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친구는 괜찮다며 나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그것도 맘에 걸렸다.
난 항상 받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제각각 다른 곳에서 만나 서로 인연을 맺어가는 사람들이 날 공주라고 부른다. 그들끼리 연결된 것도 아닌데 똑같은 별명을 듣다 보니 저절로 반성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번에도 먼저 줄 생각을 못 한 거다. 친구가 서울에서 왔으니 시간을 내어 광주에서 갈만한 커피숍도 검색하고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음식도 검색해 놨어야 한다. 아무리 일이 바쁘다고 해도 이 세상 사람 중 나 혼자만 하는 일도 아니다. 오랜만에 함께 한 귀한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세팅하지 못한 걸 반성했다. 애정 표현이 부족했다. 또 받기만 했다. 근래 마케팅 책을 보며 고객에 대한 배움을 하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에게 표현하고 주는 것부터 실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