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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안 Jul 01. 2023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

가장 기억에 남는 직장 상사가 누구였나 떠올려 보았다. 아침부터 틈날 때마다 생각해도 딱히 이분이다 싶은 분이 없다. 내가 그렇게 부정적인 인간이 아닌데, 안 그랬으면 좋았을 걸 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은 몇몇 스치고 지나갔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공문서 작성하는 것이었다. 교사는 학생들 지도하는 것 외로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를 서로 나눠서 하게 되는데, 교육청에서 공문이 수시로 오기 때문에 쓸데없는 잔 일이 많다. 교사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업무 과다를 줄인다고 그 뒤로 업무를 보조해주는 여러 파트의 실무사 선생님들이 각 학교에 배치되었지만 실상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교육청에 근무하는 장학사님들은 마치 자신들이 손 놓고 공문을 안 보내면 누가 일 안 한다고 생각할까 우려가 되는지 공문 보내기엔 과히 달인들이다. 특히 코로나 시절엔 그 정점을 찍었다. 서로 누가 많이 보내나 경주 하는 것 같았다. 현장의 교사들이 잡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15년 전에는 직접 결재 서류를 들고 상사분들에게 결재를 맡으러 다녔다. 평교사였으니 직속 부장, 교감, 교장 때로는 행정실장까지가 결재라인이다. 그러면 칸 하나, 점 하나 가지고 되돌려 보내기가 일쑤인 상사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자기 결재라인에서 고칠 테니 다음엔 유의하라고 하는 관대한 분도 있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건 그런 마음 씀이 넓은 분이다. 점 하나 가지고 난리 친 지 2년도 못 되어 다 온라인 결재로 바뀌었다. 그 뒤로 사소하게 트집 잡는 상사는 없어졌다.  고학년 담임을 하면 수업량도 많고 수업도 늦게 끝나며, 수업 준비 시간도 더 투자되는데 별거 아닌 공문 가지고 오라 가라 하며 시간 뺏은 상사가 제일 밉상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고자질처럼 토해내니까 딱 한 분이 떠오르긴 한다. 6학년 담임을 하면 학교에서 평가 점수를 높게 받는다. 그 점수를 가지고 원하는 학교 전보 신청을 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원하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6학년 담임을 한 학교에서 한 번씩은 한다. 어느 해에 보니까 6학년을 해도 꼭 원하는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론 자유롭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학년을 맡게 되었다. 이젠 자녀들도 다 컸겠다, 굳이 아침 시간에 매이지 않으니 어디로 발령 나든 잘 적응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전혀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학교로 전보가 난 적이 있다. 추가 희망지까지 15개 학교를 쓰는데, 거긴 15개 안에도 안 드는 학교였다. 학교 인사를 갔더니 아무도 안 맡는 1학년과 다들 피하는 안전 업무가 남아 있었다. 새 학교에 간 첫해는 각오해야 한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안전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서 안전 업무가 부담이던 시절이었다. 가자마자 지난해 학교 안전 상황에 대한 보고서 작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서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료를 취합하고 선별하는 일이 머리 무거웠다. 전임자가 잘 챙겨놓고 전달하면 고생을 덜 하는데, 자료를 다 날려버리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새 학교에서 학생회를 맡았는데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아예 학생회 노트북을 잃어버려서라고 했다. 다행히 자료 욕심쟁인 내가 전 학교의 탁월한 자료 관리 시스템에서 받아놓은 것이 있어 도움이 되었다. 교사 업무에 있어 전년도 자료는 중요한 창고 역할을 한다. 이제는 상식처럼 되어 의당히 잘 챙겨 파일로 전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래도 나 같은 불상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보고서 쓸 자료에 허덕이고 있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파일을 보내주셨다. 교육청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찾은 자료라면서 참고가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엉겁결에 맡은 안전 업무로 수고가 많다면서 기운 내서 일하라는 파이팅까지 전해주셨다. 그때의 감동이라니..... 직장생활에서 그런 인간적인 매너 있는 분은 처음 보았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상사들은 자리의 권력을 누리는 분들이었다. 수업하다 보면 컴퓨터로 들어오는 젠 메시지를 놓치고 못 볼 때가 있고 보고도 활동에 치여 읽는 걸로 그치기만 할 때도 있다. 그럼 봤다는 문자를 주라며 껀껀이 확인하는 상사가 있다. 물론 보면 답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냥 전달 사항일 때는 읽고 답을 놓칠 수도 있다. 사람을 달달 볶으며 피곤하게 했던 그 여자 부장님이 우리 학교 방과후에서 정년 후에 무엇을 가르치신다. 하두 권력을 사랑하시길래 딱 한 번 지나친 권력남용에 대든 적이 있다. 여기서 교사와 방과후 강사로 몇 년 만에 부딪쳤지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안 체를 하지 않는다. 두 번은 인연을 맺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상사는 자리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아래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이고, 내가 싫어하는 상사는 그 하잘것없는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간들이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고 싶으면 그의 손에 권력을 쥐어 주면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처럼 달콤하게 인간을 유혹하는 것이 권력이기 때문이리라. 희망지 15안에도 들지 않는 학교였지만 지금까지 근무했던 학교 중 제일 훈훈하고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은 그곳이다. 리더가 어떤 액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직장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교감선생님은 내가 근무하던 도중 다른 곳으로 가셨다. 워낙에 좋은 분으로 존중받아서인지 후임자도 그 학교 풍토 안에서 비슷하게 역할을 잡아가셨다. 선한 영향력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비판의 눈으로 타인들을 재고 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문하게 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처럼 변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어느 자리에 가다더라도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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