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떠올려보면 우선 책과 글을 좋아하고, 이왕 밥 벌어먹으려면 다른 일보다는 좋아하는 책 만드는 일이 보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게 한 일 년 전쯤의 생각이고 다른 일을 하게 되고 조직의 생리를 맛보기 한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책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글과 책은 내 경험과 생각에 잘 스며들어 풍부한 삶을 살도록 하는 좋은 친구 같은 존재다. 그런데 책 만드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애정은 책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들은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책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 직접 책을 만든다. 몇 달 전부터 책 만드는 일을 내가 시작했다면 어쩌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슬쩍 해왔는데, 오늘 '문학책 만드는 법'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그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편집자는 우선 작가를 만나야 한다. 저자의 팬이어서 책을 산 경우를 제외하곤, 독자는 독서를 하며 저자를 잘 떠올리지 않는다. 편집자는 이와 다르게 저자의 다음 책을 계약하기 위해 저자를 직접 만나야 한다. 어떤 책을 보더라도 직접 만나보았던 이야기로 전해 들었던 책의 저자가 바로 떠오를 테다. 함께 작업하며 경험한 저자의 어떤 독특한 부분이나 그가 쓴 글과의 괴리 등의, 독자일 때는 몰라도 좋았던 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글이어도 감흥이 덜 할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내가 읽은 글에서 내가 아는 저자와 너무도 다른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싫건 좋건 저자의 전작을 독파해야 한다. 나는 기분파 독서가로, 내가 읽고 싶은 기분일 때 보고 싶은 책만 본다. 근데 편집자가 되면 읽고 싶지 않을 때 읽고 싶지 않은 글도 읽어야 한다. 업무시간에 원고를 읽어야 하니 누군가는 일하며 책 읽는다 부러워할 수 있겠다. 세상에 아직 없는 글을 읽는 기분은 오묘하고 짜릿하긴 할 것이다. 아무튼 책을 만드는 사람은 나처럼 기분파 독서가이면 안될 것 같다. 사실 내 인생은 책을 달에 몇 권 읽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편집자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꾸준히 독서하며 작가별로 그의 전작과 인터뷰 같은 자료들이 높은 벽장의 빼곡한 서가처럼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판업계는 나 같은 독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작가-편집자-서점-독자의 시스템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좌에서 우로 갈수록 피라미드 꼴로 그 수가 많은 게 이상적일 텐데 요즘은 책 내는 사람도(독립출판), 파는 사람도 많은데 책을 사는 사람들은 자꾸 줄어든다. 나 같은 독자도 출판업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그 역할이 자못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읽고 책을 유통시키는 게 나와 같은 독자가 할 일이다. 독자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워서 난 편집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