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고영범 선생께서 소설가 이미륵의 단편 하나를 올리신 일이 있습니다. 남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를 담은 <이상한 사투리 Der andere Dialekt>라는 소설인데요, 십 년 넘게 남의 땅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이었는지 제게는 이 작품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조선총독부의 수배를 피해 남의 땅을 떠도는 이방인의 처지와 번듯한 나라를 가진 기업의 주재원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 작품이 단지 이방인으로 사는 소회를 풀어놓은 정도였다면 올려놓은 소설을 읽는 것으로 끝냈을 겁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사투리’라는 말로 담아낸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담론과 메시지가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 년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오고 있던 터라 이 작품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실려있다는 <이미륵 평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미륵 선생을 그저 당시로서는 드문 독일 유학을 떠난 소설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평전에 나타난 그의 흔적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선생께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할 분이 아니었습니다. 1899년에 태어나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타국에서 쉰하나의 젊은 나이로 타계한 선생께서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1920년 독일로 유학해 1928년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선생에 관한 내용은 평전을 정리할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손녀가 둘 있습니다. 큰아이는 중학생이고 작은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제 부모들이 각별히 신경 쓰고 있기는 해도 워낙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익히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매해 거르지 않고 만나기는 하지만 뭔가 도와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요. 다행히 큰아이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말하는 것이나 쓰는 것을 그다지 불편해하지는 않습니다. 맞춤법도 평균 이상은 됩니다. 작은아이도 제 언니 따라서 곧잘 씁니다.
평전에 따르면 이미륵 선생의 작품은 모두 독일어로 발표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모두 번역본인 것이지요. <이상한 사투리>를 읽으면서 큰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독어로 된 원본과 우리말 번역본을 비교해 읽는 것도 어휘력이나 이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작품 안에 배어있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주제도 감동적이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갈 때 이걸 선물로 들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 책의 저자이신 정규화 교수께서는 오래전에 타계하셨더군요. 책에 나와 있는 이미륵 기념사업회에 알아보면 원전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했는데, 뜻밖에도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박균 교수와 통화가 되었습니다. 박균 교수께서 바로 제가 찾는 부분을 번역하셨다더군요. 손녀에게 주려고 구한다니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습니다. 덕분에 독일어 원전과 최근에 다시 다듬은 번역본까지 함께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고영범 선생께서 피드에 올려놓으셨습니다만, 바로 그 번역을 맡으셨던 박균 교수께서 직접 수정한 개정본을 다시 올립니다. 이번에 구한 독일어 원문도 함께 올립니다. 여기에 올리기 너무 긴 분량이라 제 브런치 Book Review에 따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