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잉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10. 2024

2024.12.10 (화)

애가(哀歌)

옛날 어촌에는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많았다.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고기 잡으러 나간 날을 제삿날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그렇게 잃으셨다. 그 후 가난을 피해 소년 상경하셨고,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가정을 이루고 아들 넷, 딸 하나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워내셨다.     


나는 서울에서 그런 이주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살았다. 아버지는 젊은 날에는 넉넉하지 못해서, 고향을 찾을 만큼 형편이 폈을 때는 고향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서 고향을 몇 번 찾지 못하셨다. 그러니 아버지의 고향은 내게 낯선 곳일 수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내 핏속에는 아버지 고향 바다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그중 반절은 동해 바닷물로 채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게 바다는 금 하나로 하늘과 바다를 나눌 수 있는 동해라야 참다운 바다이다. 현장은 서해에도 남해에도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곳이 바다일 수 없었다. 흉잡힐 일이겠지만, 경주 바닷가 현장에 내려가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건 현장 사정이 아니라 현장 앞에 펼쳐져 있는 동해였다.     


오늘따라 일출이 유난히 붉었다. 바다는 어느 때보다도 잔잔했다. 바다에 남은 뱃길이 한참이나 지워지지 않을 만큼. 아침저녁으로 보고 사는 바로 그 경주 앞바다에서 어제 생때같은 목숨 일곱이 스러졌다. 나머지 선원 하나를 아직 찾지 못했지만, 살아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 그 바닷길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아버지를, 자식을 잃은 가족의 마음을 생각했다.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가 놓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여느 때보다 오히려 더 잔잔한 바다가 얼마나 괘씸했을까?     


하지만 퇴근길에서 만난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