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은 스위스에서 시작해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빠져나가지만 구간 대부분이 독일 서부에 걸쳐 있어 독일에 있는 강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독일 구간에 들어서면 대체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데, 그중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30킬로미터 정도 되는 짧은 구간을 라인가우라고 한다. 이 구간이라고 해서 모두 라인가우인 건 아니고 북쪽 언덕만 이에 해당한다. 언덕이 남향이다 보니 햇빛이 잘 들고 토질도 리슬링 품종의 포도가 자라기 아주 적합해서 이 지역에서 생산한 화이트와인이 꽤 유명하다. 그 구간 중간쯤에 세계 최초의 리슬링 생산 법인이라는 슐로스 요하니스버그 와이너리도 있다.
라인가우는 라인강과 마인강이 만나는 호흐하임에서 시작해 요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인 계곡의 명승지 뤼데스하임에서 끝난다. 호흐하임은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마을이 언덕 위에 있고 마인강 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언덕은 모두 포도밭으로 덮여 있다. 그 포도밭이 시작하는 언덕 위에 있는 초등학교 이름도 포도밭 학교(Weinbergschule, vineyard school)이다. 몇 년 전에 혜인이가 졸업했고, 지금은 혜원이가 내년 입학을 앞두고 예비학교를 다닌다.
요즘은 와인이 비싼 술이라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와인을 사려면 몇만 원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5~6유로 정도면 아주 훌륭한 와인을 살 수 있다. 혜인네 집 바로 앞에도 꽤 오래된 와이너리가 있어 갈 때마다 몇 병씩 사들고 온다. 여섯 병 한 박스가 36유로, 5만4천 원. 와인은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글뤼바인이다. 말하자면 독일식 (막걸리를 끓인) 모주인 셈인데, 대체로 레드와인을 따끈하게 데워 만든다. 프랑스에선 이를 뱅쇼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리슬링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화이트와인으로도 글뤼바인을 만든다. 어제 와인을 사러 가니 글뤼바인 3리터 한 통에 18유로, 2만7천 원이란다. 첫물로 나오는 와인은 같은 됫박 통에 그거 반값도 하지 않으니 이들에게는 이 가격이 딱히 싼 것도 아니다.
이들에게 와인은 뭐랄까, 술이라기보다는 음식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하긴 우리도 막걸리를 새참으로 여기기도 했으니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니 와인 마시고 운전해도 되냐고 묻는 내가 이상하게 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