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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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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8시간전

2024.12.19 (목)

이곳은 아침마다 비가 내린다. 낮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하늘이 보이다 저녁이 되면 다시 낮은 구름으로 덮인다. 딱히 추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견디기 만만한 추위도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곤 동화에서나 보던 모습과 분위기가 있지만, 그거 지나면 5월 초까지는 영 여행할 곳이 못 된다. 춥고 음울하고 날씨도 변덕스럽다.


몇 달씩 여유를 두고 아이들 집에 올 계획을 세웠던 것과는 달리 이번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길게 휴가를 낼 상황이 아니어서 올해는 아이들을 못 보고 넘어갈 줄 알았다. 혜인 아범이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란다면서, 이번에 안 오면 아이들 모습 얼만큼은 못 보고 넘어갈 거라며 끌탕을 했다. 영상통화로 아이들을 자주 보기는 하지만 그걸로 아이들 자라는 모양을 대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매번 만날 때마다 아이들 자란 모습을 보고 놀라곤 했다.


큰애는 이번에 정말로 많이 자랐다. 작년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내 손에 아이 손을 포개어 사진을 찍고 나서 문득 이전에도 같은 사진을 찍은 일이 생각나 찾아보니 작년 봄 사진은 아이 손인데 이번에는 어른 손이 되었다. 이면체면 가리지 않고 휴가 내기를 잘했다. 아마 내년쯤 만났으면 누구세요 물을 정도로 자라 있었을 것이다.


시간도 없고, 갈 곳도 마땅치 않고, 게다가 이번엔 혜인 아범 공연도 없어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큰애 깨워서 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가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싱싱한 샐러드 하나 사 들고 와서 아내와 아침을 먹는다. 갓 구워낸 빵에 소시지 두어 개. 소박한 아침인데 의외로 맛있다. 식사하고 나면 작은애 깨워 예비학교로 해서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면 열 시. 책 읽고 글 몇 줄 쓰다 보면 큰애 돌아올 시간. 저녁 먹고 큰애와 보드게임 두어 번. 아들 내외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벌써 잘 시간.


이렇게 지내본 일은 없었는데, 이것도 괜찮다. 오늘은 아들 내외 열다섯 번째 결혼기념일. 혜인 아범이 시간이 나질 않아 저녁 먹고 간단한 와인파티로 가름하기로. 참 세월 빠르다. 생각해 보니 그해 큰일이 많았다. 연초에 사우디에 부임해 여름에 상견례하고 연말을 며칠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우리는 금혼식까지 여섯 해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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