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경청

by 박인식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아는 것은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이 내게 있다. 큰 장점이요 사회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늘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며칠 전 발주처에 용역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 함께 했던 후배에게 이런 지적을 받았다.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알아듣기 편해서 좋기는 한데 듣는 사람이 걸고 넘어갈 여지를 남겨주지 않으니 어쩌면 듣는 사람이 속으로 불편해 할지 모르겠다. 말이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인데 너무 한 번 설명으로 끝내려는 건 아닌가. 뭔가 상대가 묻거나 지적할만한 여지를 조금 남겨 놓는 것은 어떻겠나.”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정확한 지적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날 불편해 한 사람들이 그렇게 불편해 하는 까닭을 가장 분명하게 짚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질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선의로 해석하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오만함으로 여겼을 테니 말이다. 물론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겠나마는, 늘 염두에 두고 경계하여야 할 일인 것만은 분명하지 싶다. (2004.09)



짐작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 하나


교회학교가 주로 사용하는 예배실을 경로대학에서 함께 사용하고 있어 의자를 없애고 온돌로 바꾸는 게 어떨지 건의한 일이 있었다. 예배실에 있는 긴 의자는 한 방향으로 놓여 있어 공과공부할 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니 차라리 의자를 없애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였다. 게다가 경로대학에 나오시는 어르신들도 의자보다는 온돌을 편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일어날 때마다 점점 더 힘들어하시는 걸 보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짐작만으로 알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사정은 들을 생각도 않고 짐작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한다. (2005.10)



짐작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 둘


교회학교 수련회를 마친 후 열린 강평회에서 여학생들이 샤워실 때문에 몹시 불편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학생들은 샤워를 하면서 친해지지만 여학생들은 친해지고 나야 함께 샤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동성 간에 사용하는 샤워실이라고 해도 칸막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년에 수련원 전체를 리모델링할 때 여자가 늘 많고 사용시간도 길다는 점을 고려해서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 두 배로 만들었지만 그런 불편은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성의 관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할 일이 아닌가 한다. (2007.08)



뒷자리에서 보는 풍경


늘 운전석에 앉아 눈앞으로 다가오는 풍경만 보다가 간혹 뒷자리에 앉아 창문 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보노라면 운전석에서 보는 풍경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놀란다. 늘 지나는 길인데도 말이다. 같은 차 안에서 단지 어느 자리에 앉았느냐에 따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면 같은 문제를 놓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 나와 다른 생각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8.08)



설득력


누구 못지않게 설득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설득 당하는 사람들이 설득 당했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해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설득을 하되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도록 애썼다. 겸손한 설득력을 구하기도 했고 또 그렇게 노력하면서 설득 당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던 불만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대화하는데 보일 수 있는 겸손이란 그저 말 수를 줄이는 것뿐이어서 그렇게 했는데 결국은 말 수를 줄인 것이 경청으로 이어졌고 그것으로 불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자신이 말하는 바를 경청해주기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2009.04)



억지 쓰는 사람


억지 쓰는 사람을 만나면 몹시 고단하다. 말을 이어가기도 고단하고 말을 끊으면 말 끊었다고 시비 걸 테니 말이다. 그렇게 억지 쓰는 사람이 싫기는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억지 쓰는 일이 적지 않음을 깨닫는다.


억지는 왜 쓰는 걸까? 억지 쓰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지혜로운 걸까? 중요한 건 억지 쓰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이 억지 쓴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억지인 줄 알고 쓸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거기에 대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억지가 풀리겠나. 상대가 억지 쓰는 속마음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고 그것을 푸는 게 훨씬 지혜롭고 효과적이 아닐까. (2009.10)



듣는 것만으로도


오래 전에 기한이 되지 않았음에도 사정이 생겨서 세 들어 살던 분께 집을 비워주기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아내가 이 일을 처리하려 하였는데 그 와중에 서로 오해가 있었는지 그 댁에서 집을 비워줄 수 없다고 했다. 기한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배려한 부분도 적지 않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 댁을 찾아 시비를 가리려 했다.


우리보다 손위 분들이라 먼저 이야기 듣기를 청했다. 안주인께서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동안 느꼈던 섭섭함에 대해 토로하였다. 예상과 달리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나서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으니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집을 비우겠다고 했다. 나는 단지 섭섭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준비해간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모든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살아오면서 갈등 중 상당 부분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되거나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작은 여유가 없어 매번 갈등을 문제로 번지게 만들고 만다. (2010.08)



경청의 유익


경청은 내 실수를 줄이고 내 지혜를 배가시킬 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얻는 덤을 누릴 수 있다.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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