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사고가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란 평상시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사고로 획기적인 변화나 발전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그 합리적인 사고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는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된다. (1994.06)
한 부서나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평 반 자랑 반의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기가 그 조직에서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한 사람이 있고 없는데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그 조직은 조직으로서 생명을 잃은 것이고 그 책임의 대부분은 바로 그 중요한 존재에게 있다. (1995.09)
일반적으로 기억력은 10~20세가 절정이요, 상상력은 30세가, 창조력은 30~55세가 절정이며, 사리를 추상 종합하는 능력은 45세부터 절정기가 시작되어 70세가 넘도록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니 정년이 60세가 되지 않는다는 건 국가적으로도 여간 낭비가 아니다. (1998.04)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실력을 쌓아야 한다. 일단 강자의 대열에 들어서면 강자가 되기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견제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실력은 있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강자가 아니다.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견제까지도 극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03.08)
개혁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개혁이 실패하게 되면 더 큰 고통이 따르니 어지간한 각오가 없으면 아예 시작할 일이 아니다. ‘개혁(改革)’이란 글자 그대로 껍질을 바꾸는 일이니 왜 안 그렇겠나. 그러니 죽을 각오가 없다면, 고통을 감당할 분명한 의지가 없다면 그저 형편껏 고쳐 쓰고 말 일이다. (2004.09)
승부에서 상대에게 졌다. 이럴 때, 내가 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상대가 이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얼핏 같은 말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음번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졌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있는 문제를 살피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이긴 동력이 무엇인지 살피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누가 더 높겠나?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겠나, 아니면 이기려는 사람이겠나? (2004.11)
일을 하다보면 상대가 말을 뒤집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의도적으로 뒤집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정확하지 않아 오해가 생겨 결과적으로 말을 뒤집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상황을 입증할 문서를 만들어 놓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때 메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록 내가 작성한 메모라고 할지라도 메모를 내보이며 사실을 환기시킬 경우 어지간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를 부인하지 못한다. 이런 일은 실제 상황에서 무수히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메모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가 보는 앞에서 꼼꼼하게 메모한다면 상대도 섣불리 말을 뒤집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잘 뒤집는 상대를 제어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2004.10)
기차를 움직이게 하려면 처음에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기차란 워낙 무거워 정지된 기관차 바퀴 밑에 작은 나무토막 하나만 올려놓아도 어지간한 힘이 아니고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이런 무거운 기차는 움직이게만 하는데도 이렇게 큰 힘이 드니 이 기차를, 그것도 방향을 틀어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거운 기차의 방향을 틀려면 우선 기차를 움직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단 움직이고 나면 방향 바꾸는 것은 훨씬 쉬워질 테니 말이다. 조직을 이끄는 일이라고 이와 다르겠나. 조직이 움직이려고 하기도 전에 방향부터 바꾸겠다고 진을 빼는 사람들을 보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2004.10)
신라 진평왕 13년(서기 591년)에 축조된 경주 남산신성에서 1미터가 채 안 되는 준공 기념비가 11개 발견되었는데 이들 비문 앞머리에 성을 쌓고 나서 3년 안에 무너지면 죄를 받을 것을 약속한 서약문이 적혀 있었다. 아울러 공사 구간별로 공사에 동원된 촌락과 책임자 이름을 적어 놓았다. 만약 성벽이 무너지게 되면 즉각 해당 책임자를 처벌하고 주민을 동원하여 고치거나 다시 쌓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서약문은 고구려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런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하는 공사마다 부실시공 시비가 끊이지 않으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2004.10)
상사에게 지시를 받으면 지시한 사람이 진행상황이나 처리결과를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시로 상황을 보고하여 상사가 지시한 일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부하직원으로서 당연히 감당하여야 할 역할이고, 그 일로 인해 상사의 신임을 받는 덤까지 얻을 수 있다. (2004.10)
이 없으면 잇몸으로 견디는 법이다. 그래서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이 빠져나가면 당장 그 조직이 무너질 것 같아도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건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빠져나가서 새로운 사람에게 같은 역할이 주어지면 새로운 사람이 같은 정도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역할이 주어졌을 때 너무 나대지 말고 겸손히 열심을 다할 일이다. (2004.12)
인간은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 통제하든 얼마 가지 않아 그 통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통제로 사람을 움직이려 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힘이 좀 더 들지 몰라도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결국은 일을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2005.08)
큰 배가 방향을 틀자면 시간이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통이 오래된 조직일수록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더 힘겹다. (2006.01)
조직 안에서 개인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면 먼저 그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지 조직에게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그 책임을 개인에게 물으면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조직의 상황 때문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으니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 아니라 먼저 조직의 문제를 살피고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열심을 다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개인에게 열심을 다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기 때문이다. (2006.09)
일본 출장길에 들른 동화광업에서 회의를 하던 도중 회의실 중앙에 걸려있는 사훈이 눈길을 끌었다.
‘未踏への 挑戰’
동화광업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광산 활동을 하는 광업회사였지만 광업에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광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鑛害)를 처리하는 회사로 탈바꿈했고,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 기업의 내력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게 된 “가보지 않은 길을 도전해보라”는 사훈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훈이란 기업의 존재 목적이나 향하고자 하는 방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사훈이 그대로 실천되고 있는 기업은 생각만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훈을 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를 실천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6.12)
기업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목표했던 이익을 올리는 일은 언제나 힘겹다. 목표했던 이익을 얻기 위해 이익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편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편법으로는 한두 번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수행하는 조직이나 과정이 그를 달성할만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익이란 욕심을 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한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02)
마라톤에서 일찌감치 선두로 나서 독주를 계속하면 우승 확률은 높을지 몰라도 기록을 단축하기는 어렵다. 사회생활 역시 다르지 않다. 동료와 함께 출발해 가능한 선두에 나서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독주를 계속하면 긴장이 풀어져 궁극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고 결국 어느 단계에서 성장이 멈추게 마련이다. 그러니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독주할 것이 아니라 동료를 격려하고 도와서 함께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료와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면 자신을 더욱 채찍질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더 크게 성장할 뿐 아니라 동료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02)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길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유능한 인재로 길러내는데 있다. (2007.06)
힘을 다해 추진해오던 사업을 수주하지 못해 몹시 안타까웠지만 실패를 실패로 남기지 않으려면 치열한 자기반성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과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가운데 지금까지 수주한 모든 사업이 상대를 압도할 만큼 모든 면에서 격차를 보이는 상태에서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 “이 정도면 합격하지 않겠나” 해서는 결코 합격할 수 없고 “이 학교에 가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야 합격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사업을 우리가 수주할 가능성이 있겠다” 정도로는 수주를 장담할 수 없고 “우리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는 도저히 수주할 수 없겠다” 정도가 되어야 수주가 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상대를 압도할 상황이 되지 않고서는 상대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압도할 정도가 아니면 아예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를 압도할 만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2007.06)
핵심이 없으면 뭉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핵심이 필요하다. 말을 하는데도 전하려는 내용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핵심주제가 필요하고, 일을 하는데도 효율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핵심기술이 필요하고,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데도 사람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핵심인재가 필요한 법이다. (2008.02)
운동경기에서 여러 팀이 모여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리그와 토너먼트가 있다. 단기전인 토너먼트에서는 한 번 패배하면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일을 생각할 수가 없고, 그래서 투입 가능한 모든 전력을 쏟아 붓는다. 장기전인 리그에서는 최종 승률이 우승의 관건이므로 가장 승리를 많이 거둘 수 있도록 전력을 최적의 상태로 배분하여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반드시 승리로 이끌고 이기기 어려운 경기는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기도 한다.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팀이라고 해도 시즌 내내 이어지는 경기에서 전승을 거둔다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결과를 들어본 일도 없다. 그러다보니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다음 경기를 위해 전력을 비축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고, 리그를 치르면서 마치 토너먼트처럼 모든 경기에 가진 전력을 모두 쏟아 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기업에서 경영성과를 평가하는데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장기전인 기업경영을 단기성과로 평가하다보니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반드시 승리로 이끌고 이기기 어려운 경기는 때로는 과감히 포기해서 최종적으로 승률을 끌어올려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기전처럼 한 경기에 가진 모든 전력을 쏟아 부어 기진맥진 해져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다음 경기를 그저 눈 뻔히 뜨고 내주어야 하는 어이없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이들일수록 그런 압박감에 치어서 선택해서는 안 되는 자승자박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경영책임자를 평가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 평가를 하되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에 따른 결과가 나타날 만큼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일 얻을 수 있는 기름진 논 한 마지기를 오늘 얻을 수 있는 다락 밭 한 뙤기로 바꾸는 악수를 두지 않을 수 있지 않겠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게 악수인지 왜 모르겠으며 그 사람인들 그 악수가 좋아서 두었겠나? 그렇다면 알면서도 악수를 둘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사람이 더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 경영책임자가 악수를 두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던가, 악수를 둘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면 죽을 쑤든 말든 일체의 간섭을 금하라! (2008.11)
연습경기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상대 공격을 막아내려는 젊은 친구들에게 관장께서 상대 공격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자기 공격에 충실하기를 권면하셨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상대 공격을 어떻게 모두 막아낼 수 있겠나.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하다보면 자기 자세가 모두 흐트러지고 결국은 공격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공격다운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 내줘야 할 점수는 내주더라도 자기의 공격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점수를 잃게 되면 다음 기회를 도모하면 된다. 그리고 상대가 공격한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이 매번 점수로 연결이 되겠나.”
그것이 어떻게 검도에만 적용할 수 있는 말일까. 인생이 모두 그렇지 않겠나.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어떻게 궁극적인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2008.11)
실패는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를 이겨내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9.01)
불손한 부하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부하직원을 바꾸는 일이 쉽지도 않고 바꿀 수 있다 해도 그렇지 않은 부하직원을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사람은 도구도 아니고 맞춰 살도록 지어졌으니 태도가 못마땅해도 그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자기완성의 깊이를 더해갈 수도 있다.
태도가 불손한 것과 능력은 별개 문제이다. 태도도 불손하고 능력도 떨어진다면 그런 직원을 고용할 곳이 없을 테니 태도가 불손한 부하직원은 그런 대로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그 능력을 활용하면 되는 일. 내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만 귀담아 듣고 내가 시킬 것만 시킬 일이다. 그러면서 혹시나 내가 베푼 선의로 인해 그가 불손한 태도를 고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꾸중하실 일 하나쯤은 덮어주시지 않겠나. (2009.03)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 주류 경제학자들의 조언은 대체로 “내가 행한 대로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데 초점이 모아진다. 자신들조차 따르지 않는 방책을 누군들 따르겠나. 그러니 늘 싸움이 나는 것이 아닌가. ‘바람 풍’을 ‘바담 풍’이라고 가르치고, ‘바담 풍’이라고 따라하는 제자들을 나무라는 훈장의 고사를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인데. (2009.07)
새로운 시도와 제안을 적절한 절차를 거쳐 검토하고 이를 승인했다면 비록 그 결과가 실패로 나타난다고 해도 제안한 사람이나 실행에 옮긴 사람을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2010.05)
옳지 않은 일이라면 남들이 모두 옳다고 할 때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아예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처럼, 남들이 모두 옳다고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 보다 아예 남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옳다. (2011.10)
누구든 'No'라고 대답하는 건 편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의도적으로 그런 대답을 들으려는 게 아니라면 ‘Yes’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거나 그런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 사람이란 한 번 말을 뱉고 나면 어지간해서 그것을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No’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 시간을 두어 상대가 ‘Yes’라고 대답하도록 만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그런 대답을 얻지 못한다 해도 아예 의사 표현을 하지 않도록 만들면 뭔가 달리 수습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