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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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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06. 2024

2024.06.06 (목)

오래전 일이다. 뭔가 무척 기쁜 일이 있었는데, 문득 이곳에서도 이렇게 좋으니 죽어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마 그때부터 천국에 소망을 두게 되었을 것이다.


모처럼 처가 산소에 왔다. 함께 온 막내 처남은 산소 가꾸는 일에 지극정성이다. 조상 산소 옆으로 형님들 뿐 아니라 자기 부부 가묘까지 만들어놨다. 풀을 뽑고 낙엽을 긁는 처남을 보고 기왕 왔는데 자기 산소에 대고 절이나 한번 하고 가지 그러느냐고 어깃장을 놨다. 죽고 나면 산소 쓰는 건 물론 장례도 치르지 말라고 일러놓은 내게는 그 지극정성이 그저 부질없는 일로 여겨졌거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름을 쳐다 보다가 천국이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졌다. 거기 가면 좋기는 할텐데.


갑자기 천국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좋으면 또 어쩌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사가 무덤덤해졌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천국에 대한 소망도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이젠 천국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렇다. 있어서 딱히 기쁠 것 같지도 않고 없다고 섭섭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걸 따지는 것이 모두 부질 없는 일이다 싶고. 그저 무념무상이라고나 할까.


예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천국을 말씀하신 일이 언제 있기는 했는지 잘 모르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나 천국은 죽음 이후에 옮겨질 어떤 세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 혹은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것은 아니었을까? 영생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영생이나 천국은 믿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건 혹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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