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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15. 2024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

진실의힘

2024년 4월 10일


새벽기도를 가는데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울렸다. 새벽기도가 끝나니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속보가 들어와 있었다. 대낮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스러져간 그 시간에 리야드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이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칠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잠수함과 부딪쳤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상식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 음모와 억측이 난무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 후로부터 이 일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세월호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낯설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수년간 지켜보면서 김성수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를 대할수록 그의 기사가 지닌 가치가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마무리한 백서가 나왔다고 했다. 백서 발간을 알리는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이 책은 조사위원회나 검찰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사위원회와 검찰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프레임 안에서 제대로 묻기 어려웠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자 했다. ‘누가 잘못했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서술의 중심에 놓았다.”


이 글을 보고 바로 도서관에 신청해 받아 읽기 시작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작이었다. 백서의 모범으로 삼아도 되겠다. 무려 9백 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에 읽는데 보름도 넘게 걸렸지만, 읽기를 잘했다.


이 책으로 세월호 참사의 자초지종은 모두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회적 참사를 줄이는 좋은 가이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 핵심이라고 여길 만한 부분을 옮겨 적는다.


♣♣♣


1.


재난에는 긴 잠복기가 있다. 긴 잠복기가 있다는 것은 비극을 막거나 개입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사고와 재난에서 잠복기 동안 초기 경고 신호가 잘못 해석되거나 무시됐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재난을 만들어 낸 긴 과정이 있다.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이들은 여럿이었다. 세월호 증개축을 승인하고 배를 검사한 한국선급,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한 인천해경, 매일 세월호 출항을 점검했던 운항관리자,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졌어야 할 청해진해운이 있었다. 참사를 막을 수 있던 많은 단계에서 이들은 자신의 부주의나 형식적인 일 처리, 경고 신호의 무시가 304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낳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큰 사고로 이어진 적은 없으니까.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안전 점검을 다 형식적으로 하니까,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가 만들어졌다.


선원들은 “이 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하다, 잘못하면 바로 뒤집어지는 배다”라며 서로를 조심시켰다. 불안했던 선장과 선원들은 때로 청해진해운 임직원 같은 의사 결정자들에게 우려를 전달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타를 적게 돌리거나, 평형수를 넣다 뺐다 하는 자구책은 이미 위험해진 배를 안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잇따른 사고가 안전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원래 선장이었던 이는 과적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해무팀과 물류팀에서 무시”했다는 것이다. 상무이사로부터 “나대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해무이사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면 그만두게 할 것처럼 말”했다. 해무이사는 이를 부인했다.


물류팀 차장 역시 원래 선장으로부터 “롤링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류팀장에게 “무거운 차를 많이 실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물류팀장은 “그냥 기존에 하던 대로 화물을 적재하라”고 답했다. 어차피 “화물 적재에 관해서는 물류팀이 왕”이었다. ‘청해진 해운의 방침’은 세월호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화물을 많이 싣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월호가 마지막으로 출항할 당시의 조건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증개축으로 높아진 무게중심, 과도한 화물 적재와 부실한 고박, 평형수 감축 등 그동안 쌓여온 관행에 따라 위험한 상태인 배로 출항했다. 선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면 쉽게 자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이 되리라는 점도 배를 운항하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저 그때까지 하던 대로 조심스럽게 배를 조종하면 사고 없이 제주항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할 뿐이었다.


진도VTS 관제 모니터에서 실선이 사라졌다. 세월호였다. 6천 톤급 여객선의 실선이 없어진다는 것은 기관 고장이나 사고를 의미했다. 관제사가 추적했다면 문제가 생긴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고 당연히 배를 호출해 교신해야 했다. 그 시각 진도VTS 관제실에 관제사 8명 등 10명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목포해경 상황실이 경비 전화로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고 알려줄 때까지 15분간 모르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목포해경은 지역구조본부, 서해청은 광역구조본부, 본청은 중앙구조본부를 설치 운영했다. 세 단계의 구조본부장은 모두 현장 지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다단계 구조본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목포서장으로 지역구조본부장이 3009함을 타고 바다에 나가 있었으니 4개의 지휘부가 동시에 가동된 셈이었다.


2.


세월호가 위험한 상태로 출항한 것은 우연이나 불운이 아니라 많은 사람, 조직, 기관의 행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였다. 많은 승객이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사망한 것을 배가 빠르게 가라앉았기 때문이 아니라 해경 본청부터 현장 출동 세력까지 구조 임무를 띈 이들의 무능, 태만, 오판, 비겁이 조직 전체에서 반복된 결과였다.


세월호는 하루아침에 침몰하지 않았다. 베의 상태는 도입 때부터 마지막 출항 때까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된 선박을 들여왔다. 최대 30년까지 선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선령 제한을 완화했기 때문에 이 오래된 배가 물망에 올랐다. 도입 규정에 맞도록 서류의 수치를 조작해 겨우 들여온 배를 대폭 개조했다. 여객 정원을 늘리고 실소유주 유병원이 지시한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벌인 증개축은 배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무게중심을 크게 악화시켰다. 세월호는 바다에 뜰 수 없는 배였는데도 복원성계산서가 승인됐다. 평형수 없이는 물에 뜰 수 없는 배, 배가 아닌 배에 승인을 내준 것이다.


증개축과 복원성계산서 승인 후에도 선박의 안전 운항을 위한 절차는 더 있었다. 먼저 선박이 취항하려면 그 선박의 운항관리규정을 승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승인 과정은 해경을 접대하는 절차로 변질됐다. 취항한 선박이 운항할 때마다 운항관리자가 화물량을 확인하고 복원성을 계산해야 했다. 운항관리자는 화물 고박 상태도 검사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 바깥에서 육안으로 흘수선만 대충 확인하다 보니 청해진해운이 화물을 더 많이 싣고 평형수를 빼내는 방식으로 눈을 속여 배가 더욱 전도되기 쉽게 만든 것을 잡아낼 수 없었다. 도입부터 마지막 출항까지, 배가 위험한 사태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 그 누구도 침몰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주의했고 누군가는 방관한 그 일련의 연쇄가 세월호 침몰 조건을 형성했다.


사고 당일 타기실에서 방향타를 좌우로 밀어주는 타기 펌프 내에 있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서 오작동하여 방향타가 우현 방향으로 큰 각도로 돌아갔다. 배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선회하면서 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배라면 방향타가 우현으로 크게 돌더라도 선체가 좌현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정도의 소동으로 끝나야 했다. 정상적인 배가 아닌 세월호는 20도 정도 기울어지자 불량하게 고박된 화물들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45도까지 기울어졌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세월호를 침몰에 이르게 한 조건들의 연쇄 중 세월호 운항에 관련된 이들이 미리 알지 못한 것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발생뿐이었다. 그 밖의 모든 조건은 선사, 선원, 하청업체, 감독기관이 결정하고, 실행하고, 방관하면서 만들어냈다. 사고 당일 휴가 중이던 세월호 선장의 말처럼 ‘언젠가 발생할 사고’였다.


복원력을 상실한 세월호는 101분 만에 빠르게 침몰했다. 이것도 출항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세월호는 약간의 선회와 경사도 견디지 못할 만큼 복원성이 취약했을 뿐 아니라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배 전체가 빠르게 침수되면서 침몰할 수밖에 없는 배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은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승객들이 선내 방송에 발목을 잡혀 있는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빠져나갔다.


사고 발생 해역의 관제를 맡은 진도VTS는 변칙 근무와 태만으로 세월호 사고를 실시간으로 인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초기 대응 시간이 6분 이상, 관점에 따라서는 15분 이상 낭비됐다. 진도VTS 관제 모니터에서 세월호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실선의 방향과 속도가 바뀌다가 마침내 사라질 때까지 당시 관제실에 있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는 이날 아침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진도VTS에서는 두 명이 구역을 나누어 맡아 관제하도록 한 원칙을 따르지 않고 한 사람에게 양쪽 구역을 모두 맡겨 두고 나머지 한 사람은 쉬거나 자는 식으로 변칙 근무를 해왔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101분 동안 해경은 세월호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이는 구조를 위한 판단과 실행을 가로막았다. 세월호는 101분 만에 빠르게 침몰했다. 그러나 이것은 해경이 구조에 실패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은 침몰하는 배 앞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실행하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반면 세월호 상황을 비교적 잘 예측하고 선내 진입까지도 고려했던 전남 119 소방헬기는 안개 등으로 출동이 지연되는 바람이 이미 세월호 상공을 채우고 있던 해경 헬기들에 막혀 허탕을 쳤다. 제일 먼저 투입되어야 할 구조대와 특공대는 차량과 어선을 옮겨 타며 이동하느라 도착이 늦어졌다. 결국 구조대와 특공대는 세월호에서 승객을 직접 구조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세월호기 침몰하는 동안 해경 지휘부는 지휘하지 않았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


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선원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었을 때 이런 글을 쓴 일이 있다.


“법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과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을 구분하여 처벌하고 있다. 세월호 선원을 살인죄로 기소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죄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람이 죽음에 이를 줄 알면서도 그 의무를 회피한 것이지, 그 소행이 괘씸하다 하여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인 죄로 여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법조차 시류를 따라 해석해서야 되겠는가?”


오늘 이 책을 덮으면서 그 글을 지우려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데는 후기에 적힌 글이 결정적이었다.


“공개되지 않았던 세월호 마지막 교신에서 세월호 선원들이 100톤급 해경 경비정으로 승객을 다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도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들은 수백 명의 승객을 내팽개치고 해경 경비정에 옮겨 탔다. 머뭇거렸다가는, 혹은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면 자기들은 살아 나올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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