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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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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0. 2024

2024.06.19 (목)

혜인 아범이 열 살쯤 되었을 때 이웃과 함께 경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두 집 합해서 일곱 식구나 된 데다가 텐트까지 꾸리다 보니 며칠이라고는 해도 끌고 갈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시는 차는 꿈 꾸기도 어려웠던 때여서 식구 수마다 짐을 지고 들고 버스를 타고 그 먼 길을 다녀왔다. 힘이 좋았던 것인지 열정이 넘쳤던 것인지. 지금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몹시 무더운 날 불국사 구경을 마치고 추령을 넘어 경주 바닷가 관성해수욕장에 짐을 풀었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이들이 엄마는 뭐하고 모두 아빠가 그런 걸 하냐고 아우성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는 돈 벌어오는 사람 엄마는 살림하는 사람으로 굳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읽는 사람은 웬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겠다. 아내가 해온 반찬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바람이나 쐬자고 나선 곳이 바로 그 관성해수욕장이었다는 말이지. 서울은 무더위로 모두 고생했다는데 이곳은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사실 이곳에 왔기 때문에 초등학생이던 혜인 아범과 이곳을 다녀간 생각이 난 건 아니다. 이상하리만치 이쪽에만 오면 오래전에 관성해수욕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때가 생각나곤 한다. 그 후로도 근처에 현장이 있어서 자주 왔지만 정작 관성해수욕장을 찾은 것은 조카들을 따라나섰던 작년 여행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올해. 이곳에 있는 동안 자주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가 뭘까? 그저 젊은 날이 그리웠다면 그것 말고도 기억할 것이 많았을 것인데. 혜인 아범과 여행을 떠나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였을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걷는데 평일인데도 텐트가 많았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쳤던 텐트와 비교하면 요즘 텐트는 거의 궁궐 수준이다. 텐트 안에 침실이 있고 거실이 있고 주방이 있는 게 태반이다. 접이식이기는 하지만 편안하고 커다란 의자는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화면이 제법 큰 TV를 틀어놓은 모습이 유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텐트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이젠 차 없이 놀러 가는 건 생각하지도 못하겠다.     


삼십 수년 전에 찾았던 때에 비하면 거의 천지개벽 수준이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웬일인지 찍어놓은 사진이 대낮처럼 환하다. 다음 달에 혜인 아범이 다녀가겠다는데, 그때 함께 와서 옛날을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내 나이보다 지금 혜인 아범이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세월 참 잠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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