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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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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5. 2024

2024.06.25 (화)

절세미인을 애인으로 둔 친구가 있었다. 그 애인을 보고 난 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미인을 애인으로 둔 느낌이 어떠냐고 물으니 심드렁하게 그냥 그렇다고,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바다는 동해라야 바다인 줄 안다. 거제도 현장에서 두 해 보낼 때도 딱히 바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섬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트인 바다, 그저 금 하나로 하늘과 물이 나뉘는 곳이라야 바다인 게지. 아마 아버지 고향이 강원도 바닷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본 바다가 동해였으니.     


울진 원전 현장에서는 유독 사고가 많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출근 시간에 맞춰 밤새 운전해 내려가다 보면 운전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사고 수습할 생각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파김치가 되곤 했다. 그럴 때쯤 삼척 용화언덕을 지나게 되는데, 아득한 벼랑 아래로 밀려 들어오는 파도를 내려다보고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오줌 한번 시원하게 갈기고 나면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금 하나로 그을 수 있는 바다를 내다보는 방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누워있어도 일출이 눈에 들어와 늦잠을 잘 수도 없는 방. 그런데 그런 곳에서 한 달을 지내다 보니 그 바다도 심드렁한 건 마찬가지더란 말이다. 절세미인을 애인으로 둔 친구가 심드렁해하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잠이 덜 깼나? 아침부터 흰소리는. 이제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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