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 왁스만
장정문 옮김
소우주
2024년 3월 24일
2001년 2월 이스라엘 총리로 당선된 아리엘 샤론은 2003년 12월 한 연설에서 일방적인 가자지구 철수 의사를 표명했다. 국제 관측통들과 이스라엘인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정착민을 포함한 우파 지지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반면 국제사회는 2차 인티파다로 중단된 평화 프로세스가 어떻게든 부활하기를 바라며 대체로 완영의 목소리를 냈다. 이 계획이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릴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조차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서안지구 정착촌 철수도 가능할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기로 한 그의 결정이 부분적으로는 팔레스타인과 평화 회담을 재개하라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증거가 있지만, 그보다는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면 이스라엘이 통제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구 증가 속도를 고려할 때 머지않아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유대인보다 많아지면 유대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스라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샤론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무기한 통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차 인티파다를 거치면서 가자지구가 자산이 아니라 군사적 부담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샤론이 가자지구를 포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07년 6월, 당시 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은 “가자지구 철수는 전략적 실수였다. 이스라엘이 빠지자 하마스가 그곳을 장악하면서 테러 단체는 더욱 대담해졌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투쟁이 과격해졌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가자지구 철수로 인해 이스라엘 안보가 약화했다고 생각했고,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2007년 이후에 더 많은 이스라엘인이 가자지구 철수를 후회했다.
대부분의 국제 법률 전문가들은 가자지구 점령이 종료되었고 따라서 자신들은 더 이상 그 지역의 복지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실질적으로 철수하지 않았다. 하마스가 집권한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개입은 더욱 강화되었고 안보를 핑계로 사람과 물건이 이동하는 도로를 비롯해 가자지구 경계에 대한 통제도 강해졌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를 위대한 승리라고 확신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마침내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들이 가자지구를 떠나자 환희와 승리의 기쁨에 휩싸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스스로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자 했던 바람과 달리 가자지구의 경제는 이스라엘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철수하자 가자지구의 수출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급격한 경제 침체가 이어졌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권력을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투표였다.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진 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했다는 사실은 중동 전역에 민주주의를 확산하고자 이스라엘의 조언을 무시하고 선거를 강력히 촉구했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샤론이 가자지구 철수 계획을 발표하자 비판자들은 이 계획이 하마스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은 2차 인티파다에서 팔레스타인이 폭력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마지못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무장 투쟁을 옹호하는 하마스에 대한 지지도 치솟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가자지구에서 강제로 추방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위대한 승리이자 폭력적 전략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4 이상이 38년간 지속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종식시킨 공이 하마스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하마스가 선거에 승리한 것은 이스라엘이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파타가 주도하던 자치정부가 무능하고 ㅂ부패했다는 인식이 장기간에 걸쳐 대중에게 널리 퍼진 결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파타가 부패가 만연하고 파벌주의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 반면, 하마스는 사회복지 네트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렴한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즉 하마스는 파타에 비해 깨끗하다는 인식 덕분에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의 경제 상황은 이스라엘 통치 시기보다 하마스 통치하에 훨씬 더 악화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자원을 가자지구 주민을 위해 사용하기는커녕 무기 구입과 지하 터널망 구축에 쏟아부었고 또한 가자지구의 많은 인프라를 파괴하거나 손상시킨 세 차례의 주요 이스라엘 군사공격을 촉발했다.
가자지구는 연료 부족으로 전기 공급이 제한되어 하루에 단 몇 시간만 전기가 들어오기도 한다. 전기 부족은 사람들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병원, 위생 및 하수시설, 상수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가 정권을 잡은 후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이 급증했다. 가장 흔한 공격은 로켓과 박격포를 발사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2005년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2008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남부의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만 타격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켓 사거리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모든 주요 도시와 북쪽의 하이파까지 사정권 안에 들어갔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이스라엘의 군사 보복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하마스는 이를 통해 가자지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냄으로써 하마스에는 정치적, 이념적 양보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고 이스라엘이 양보하거나 정책을 바꾸도록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자한다.
가자지구에서 정권을 잡은 이래 하마스는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와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는 특히 가자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무장단체이자 이란의 지원을 받는 극단적 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를 비롯해 IS,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소규모 지하드 단체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 단체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싸울 의지가 없고, 가자지구에 제대로 된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것을 막는다고 비난해왔다. 따라서 하마스는 이러한 비난에 대응하고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또한 그로 인해 전투적인 조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해외 기부자의 재정적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다른 무장단체들도 그렇게 하도록 허용한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은 하마스를 파괴하거나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억제하고 약화시키기를 원하면서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여 통치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며 국내 여론도 좋지 않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곳에서 활동하는 급진 무장단체를 감시하는 일을 하마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계속 통치하는 것이 가장 덜 나쁜 선택지인 셈이다.
1920년대 영국 정부는 당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던 아랍계와 소수의 유대계가 권력을 공유하는 한 국가 해법을 제안했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1990년대 초에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도 두 국가 해법을 수용했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가 결렬되고 이스라엘 정착촌이 계속 확장되면서 팔레스타인 지식인, 학자, 활동가, 그리고 많은 디아스포라 지식인은 다시 한번 한 국가 해법을 주장해왔는데, 이는 두 국가 해법으로는 모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이나 잃어버린 땅과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이를 절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차별을 종식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민족 분리주의를 강화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여겼다. 반면 한 국가 해법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필요와 열망을 잠재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오랫동안 한 국가 해법을 가장 공정한 해결책으로 여겨왔다.
한 국가 해법의 가장 큰 매력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또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기존의 한 국가 현실을 바꾸려 하는 대신 사실상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살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에게 이스라엘 국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한 국가 해법의 가장 큰 문제는 양쪽 모두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이 한 국가 해법을 지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높은 출산율을 고려할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은 필연적이다. 이 경우 한 국가 해법 하의 이스라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의 의지에 따라 권리와 안전이 좌우되는 소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