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 왁스만
장정문 옮김
소우주
2024년 3월 24일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들여다보면서 정작 중요한 걸 몇 가지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대인은 열심히 살폈으면서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만든 동력이 시온주의와 시온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정확하게 그게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고, 그들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향하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현재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자지구가 워낙 이스라엘 점령지였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주변의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자국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국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 가문의 이익이었고 국민 여론은 이와 달랐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팔레스타인인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추방되었다. 그들은 추방된 사건을 재앙을 뜻하는 ‘니크바’라고 부르는데, 그 충격의 크기가 유대인이 홀로코스트 당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수천 년 동안 정체성을 지켜온 유대인과 달리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체성의 개념이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동은 여러 민족이 이합집산하면서 국가를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땅과 민족은 그대로인 채 국가의 정체성만 바뀐 우리와 다르고, 그래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는 지금처럼 여러 국가로 나뉜 게 아닌 ‘대(大)시리아’로 묶여있는 모습이었다. ‘대(大)시리아’는 오스만제국 시대의 시리아로, 현재의 시리아ㆍ팔레스타인ㆍ이라크ㆍ요르단ㆍ레바논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인데, 팔레스타인인은 그런 국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러다가 영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독자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서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조직이 생겼다.
세계에 퍼져있는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1,250만 명인데 그중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경우는 서안지구에 290만 명, 가자지구에 190만 명, 이스라엘 시민권자 180만 명 등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은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서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누리지만 그저 이스라엘의 2등 시민일 뿐이다. 요르단강 서쪽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Hamas)가 장악하고 있는데 가자지구의 삶이 훨씬 열악하다.
나는 그동안 이스라엘 건국의 동력이 되었던 시온주의가 당연히 종교운동일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시온주의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유럽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에 맞서기 위한 자구책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생활 방식이 철저하게 세속적이었고 유대교 교리도 무시했다. 1897년 시온주의 조직을 세운 테오도르 헤르츨은 자결권을 갖는 유대국가 세우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을 뿐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유대인 대부분이 시온주의에 반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반유대주의로 고생하는데 시온주의를 내세우면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일어나면서 시온주의가 점차 종교색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세기 당시만 해도 유대인 인구 절반이 러시아에 살았다. 1881년 알렉산드르 2세가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젊은 혁명가에 의해 암살당하자 반유대주의자였던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하면서 암살 배후로 유대인을 지목했다. 그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유대인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 결과 유대인들이 러시아를 떠났다. 1882년 시작된 집단 이주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때 250만 명 이상이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ㆍ아르헨티나ㆍ남아공ㆍ호주로 이주하고 전체 3%에도 미치지 않는 7만 명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단 이주는 가난과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구체적인 유대국가 설립을 계획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대체로 홀로코스트 때문에 유대국가가 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가 없었더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수십 년 전부터 헤르츨을 비롯한 정치적 시온주의자들은 유대국가 건설을 주창했고, 시온주의 운동은 수년 동안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홀로코스트가 유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그 실현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때문에 시온주의자들이 유대국가 건설의 실존적 당위성을 확신한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과 소련은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세우는 것을 홀로코스트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현실 정치로 접근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이 세계적으로 퍼져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고 유대국가 건설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홀로코스트는 서방 국가에서 이스라엘 존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긴 했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스라엘 건국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중동 분쟁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대의(大義)’라는 말처럼 허망한 말이 없다. 대의는 명분일 뿐 속으로는 모두 딴 주머니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딴 주머니라는 게 국가의 이익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국가나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자의 이익을 위한 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말이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저자 역시 당시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나선다면서 이스라엘과 맞섰지만 속셈은 영토에 대한 탐욕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아랍국가들이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의 절박한 처지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만약 아랍국가들이 시온주의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국민을 무시하고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는 걸 보고도 방관했다면 국내 정치가 불안해져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정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가자지구에 군대를 주둔시키지도 않고 정착촌을 두지도 않았다. 지금 가자지구는 출입이 모두 막힌 거대한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2003년 12월 가자지구에 주둔시켰던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민을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이스라엘인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정착민을 포함한 우파 지지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1982년 국방부 장관으로 레바논 침공을 결정했던 강경파 샤론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물론 총리로서 팔레스타인과 평화 회담을 재개하라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보다 가자지구를 장기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면 이스라엘이 통제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인구 증가 속도를 고려할 때 머지않아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유대인보다 많아지면 유대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스라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샤론은 2차 인티파다를 거치면서 가자지구가 자산이 아니라 군사적 부담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무기한 통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고.
이스라엘 군부에서는 철수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그 결정을 비판했다. 가자지구 철수는 전략적 실수였고, 이스라엘이 철수하자 하마스가 그곳을 장악하면서 테러 단체는 더욱 대담해졌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투쟁이 과격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철수가 상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대단한 나라라고는 해도 국력이 무한정이 아닌 한 가진 국력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사방으로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파괴하거나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억제하고 약화시키를 원하면서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키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재점령해 통치하는 게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할 뿐 아니라 국내 여론도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곳에서 활동하는 급진 무장단체를 감시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계속 통치하는 것이 가장 덜 나쁜 선택지인 셈이다. 늑대를 앞세워 늑대를 막는다는 ‘이이제이’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400쪽이 안 되는 책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요약해놓은 분량이 다른 책 두 배가 넘을 만큼 많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제를 빼고도 이 리뷰에 다 담지 못했다. 이제는 뭐든 쌓아둘 나이가 아니라 하나라도 덜어내야 할 나이라서 가능하면 빌려서 보고, 사서 본 책이라고 해도 어지간하면 없애고 있다. 그런데 중동 분쟁을 다룬 책은 하나같이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관심이 크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관심에 비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