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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라오 Jan 13. 2022

삐뽀삐뽀! 늦바람 주의보

인생 늦둥이 주니어 에세이 #2



난 도대체 왜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거지?
하... 정말 죽고 싶다.



삼춘기인지 사춘기인지도 모를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의 나는 매일 수십 번 이런 생각으로 힘들었다.


가난한 사람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이 꼬인다고 했던가? 내가 10살쯤 되던 해 어느 날, 생활보호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로 얼마 전까지 신발공장에서 본드 냄새를 맡으면서 일하시던 어머니는 그로 인해 몸이 좋지 않아 지셨던 건지 일을 그만두시고 대신 힘 좋아 보이는 구원투수를 영입해오셨다. 돈도 없고 님도 없는 현실의 무자비함을 잊기 위해 밤낮으로 술집을 당신의 집처럼 드나들며 '참이슬 일병 구하기'를 연출하시더니 마침내 같이 참이슬 일병을 구하던 동지를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낮에는 사람 좋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에서 밤에는 트로트 DJ 겸 BFC 파이터(방구석 파이터)로 전격 변신하던 알코올 중독자 새아버지. 오시고 나서 얼마간은 아주 다정한 새아버지의 표본이었다. 먹을 것도 사주시고 다정한 말도 해주시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영화 '스파이더맨'의 원작을 우리 몰래 쓰고 계셨던 건지 어느 날부턴가 술에게서 큰 힘을 빌리시더니 큰 책임감을 가지고 고작 11살인 나를 강하게 키워주셨다. 트로트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 악마 교관은 해병대의 '지옥주' 훈련에 착안해 먼저 카세트 오디오로 트로트를 시끄럽게 틀어놓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기' 스킬을 통해 잠 안 재우는 훈련을 조기교육 해주셨다. 때로는 다가올 종합격투기 시대를 예언하듯 어머니를 상대로 무자비한 격투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끔 훈련에 지쳐 훈련장을 도망쳐 나와 옆 집 2층 옥상으로 대피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런 날도 별은 왜 그다지도 아름답던지. 이때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더 강하게 크고 싶어 중고등학생 때는 동네의 합기도 도장과 우슈 도장 등을 다니기도 했었는데 대련 중 몇 번 다치다 보니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새아버지의 조기교육에 부응해 UFC에 진출한 김동현과 정찬성 선수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격투기 선수가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그러더라. "최고의 복수는 엄청난 성공이다."라고.(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깐 또 다르게 성공하면 되는 거니깐 난 괜찮다.)


조기교육의 폐해라는 단어를 여러 방송에서 떠들어대기 이전에 이미 조기교육의 피해자였던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호르몬에게 까지 참 교육을 당했다. 호르몬의 과도한 분비 때문인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여드름이 온 얼굴을 점령하고 만 것이다. 여드름 따위는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며 별거 아니라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여드름 피부를 어떻게 관리해야만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시절의 나는 여드름 대군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열개의 손톱이 남아있습니다."를 외치며 용감히 맞섰지만 터지고 패이 고를 반복하다 장렬히 달 표면 같은 얼굴로 전사했다. 패전 후유증으로 대인 기피증까지 얻어 20대까지의 나는 그저 자존감의 바닥에 떨어진 시간을 주워 담고 있을 뿐이었다.


삼포세대, 십포세대를 넘어 아무것도 포기해본 일조차 없을 20대를 지나 서른 초반이 된 나에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시(詩)'라는 늦은 온풍(溫風)이 불어왔다. 문학 소년을 건너 띄고 단숨에 문학청년이 된 것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이 무렵 나는 시 창작 온라인 커뮤니티 여러 군데 가입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꿈속에서 시를 쓸 정도로 시 읽기와 습작의 웅덩이에 푹 빠져 있었다. 시를 쓰기 위해 시작법에 대한 책은 물론, 논어, 자유론 등의 철학서적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물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열정은 한 여름의 열기처럼 어느새 식어버려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그 시기의 나는 정말 낮에도 꿈을 꾸며 온전히 살아 있었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문학청년의 열정이 식은 이후에는 <꿈꾸는 다락방>, <시크릿> 등의 자기계발서에 빠져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공식을 믿으며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기도 했고 유튜브로 <세바시>, <김창옥의 포프리쇼>, <김미경TV> 등을 열심히 챙겨보며 열을 식히기도 했다. 주위에 나를 챙기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행히 책과 유튜브는 나를 도닥이고 열정의 씨앗을 뿌려주었다. 이때 읽은 자기계발서들이 좀 뜬구름 잡는 식의 내용이라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 가슴에 "성공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는 희망과 열망을 지펴줬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책들이었다. 아직까지도 김창옥 강사님의 유튜브를 통해서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고 있고 MKTV 김미경TV를 통해서는 위로와 함께 배움도 많이 얻고 있어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러한 위로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나의 힘들고 변변치 못한 세월들을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늦었다고 느끼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자.
10년 뒤에 또,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마흔을 바로 코 앞에 둔 11월의 어느 날, 7년여를 다닌 그나마 안정된 직장을 겂 없이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된 것은 누가 봐도 무서운 늦바람일 테지만 바람났다고 바가지 긁을 아내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40대 중반을 향해 하루하루 맹렬히 달려가는 나는 올해도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입학 신청과 미드 '프렌즈' 쉐도잉을 통한 영어공부, 경제지 인터넷신문 1년 구독, 에세이 책 내기라는 도전을 통해 하루하루 죽어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고 싶진 않았지만 더 늙어 고생은 더더욱 사서 하고 싶지 않기에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가 아닌 '오늘만 열심히 하자.'(만화책 '도박묵시록 카이지' 대사 中)는 마음으로 공부와의 늦바람을 오늘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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