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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라오 Jan 12. 2022

먼저 가, 난 이미 달랐어.

인생 늦둥이 주니어 에세이 #1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한테 괜찮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연기상은 받은 배우 오영수 씨가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이라고 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책 제목에 위로와 핑계를 편의점 1+1 상품처럼 얻어버린 늦깎이 인생인 나에게 있어 79세에야 크게 이름을 알린 노 배우의 겸손한 수상소감이 결코 가벼이 들리지 않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큰 상을 받아 이름을 떨치거나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뤄내야만 '괜찮은 놈'이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표면상으로는 '괜찮은 놈'으로 비추어지는 이 세상에서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인 불혹(40세)을 훌쩍 넘겨버렸으나 아직도 내가 정확히 어떤 놈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아마도,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괜찮은 놈'이 아니었다.


나는 7살에 뇌졸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릴 적 허리를 다치셔서 신용카드 대신 장애인 복지카드를 가지고 계신 어머니와 함께 나라에서 주는 7평 남짓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겨우 몸 하나 누이고 사는 궁핍한 고졸(그것도 공고) 인생을 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컴퓨터 도매상가의 한 대리점에서 설치기사로 잠시 몸 담고 중학교 비정규직 전산보조원이란 꿀보직으로 몇 년 간의 세월을 죽이고 살아가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원대한 웹프로그래머의 꿈을 가지고 영세한 IT 스타트업(이라 말하고 구멍가게라 읽는다)에서 일하다 반년 치 월급을 떼이기도 했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서는 시인이라는 불리기 '괜찮은 놈'이 되고 싶어서였는지, 시가 정말 쓰고 싶어서였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몇 달여의 습작 기간을 가지기도 했다. 재능이 부족했는지 끈기가 부족했는지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어 꿈이라는 달콤하지만 불확실한 미지의 단어로 남겨두었지만 말이다.(이 당시 나는 시 쓰는 꿈도 꿨었는데 꿈에서 내가 쓴 시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면 도무지 그 시가 생각이 나지 않아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괜찮은 놈'으로 짧은 보폭으로나마 나아가던 시기라면 작은 병원의 온라인 마케터로 매년 연봉도 조금씩 오르고 승진도 하면서 보내던 7년 간이었다. 이마저도 어머니와 이웃주민,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괜찮은 놈'에서 내가 바라는 '괜찮은 놈'이 되고 싶은 마흔의 나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말이다. 이 시기 내 월급통장의 따뜻했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결코 따뜻하지가 못했다. 이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회사를 과감히 때려치우고 취미로서 좋아하던 사진일(프리랜서 사진작가)을 시작했다. 이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물론 처음 만난 사람들 조차 "용기가 대단하다", "자유로운 삶이 부럽다" 등의 부러움 섞인 달콤한 말을 건네지만 실상은 입에 겨우 풀칠만 하고 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탈을 쓴 반 백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의 나는 일상적으로도 '괜찮은 놈'은 아니었다. 사실은 어제 소모임 어플 오프라인 벙개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2살 어린 여자분께 초면에 반말을 하고 말았다. 초면에 반말하는 걸 싫어하는 내가 취기에 그만 실수를 하고만 것이다.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고 그리 센 편도 아니라 평소에 일부러 반잔씩 꺾어 마셨었는데 어제는 같은 테이블에서 원샷으로 주도를 앞서 나가시는 분들과 감히 보폭을 맞추려다가 그만 일찍 취해버렸다. "초면에 반말은 좀..."이라는 그분의 말에 아차! 하고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고 사과는 드렸지만 어제의 '괜찮은 놈'으로 활약하지 못했던 오늘의 '나쁜 놈'은 오늘도 반성! 또 반성!(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술 마시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버릇도 올해는 꼭 고쳐야겠다.) 해야만 하겠는데 "도덕은 지금까지 삶을 가장 심하게 비방하는 것이었고, 삶에 독을 섞는 것이었다."라는 니체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감히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무모한 이에게 도덕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아이유가 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대해서, 가치관이나 신념이 확고한 사람도 아니고요, 상황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히는 사람이에요. 딱 말을 하기가 어렵죠. 1분 후에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네, 저는 이렇게 바뀌는 사람이에요."라고 했듯이 나 또한 수시로 일상의 '괜찮은 놈'은 아닐지라도 '나쁘지 않은 놈'과 '나쁜 놈'은 오가고 있다.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커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던 놈의 말이니 부디 믿어주시기를.


어느 날 지나가는 자동차의 뒤창에 붙여진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라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웃은 기억이 나는데 오늘 오영수 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니 이 문장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른 차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뒤쳐진다고, 잠시 멈춘다고, 조금 걸리적거린다고해서 그게 틀린 거라고? 그냥 운전실력이! 속도가! 다를 뿐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간 조크식으로 생각해본 것이지만 아무튼간에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의 인식이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도 오영수 선배님(오늘부터 저의 인생 선배님이십니다. 충떵!)처럼 늦더라도 스스로 괜찮은 놈이라 생각될 때까지 뒤통수에 이렇게 붙이고 다니고 싶다.



먼저 가. 난 이미 달랐어.


남과 달라도 그냥 나라서 괜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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