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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라오 Jan 15. 2022

그래, 난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 같아

인생 늦둥이 주니어 에세이 #3





해가 바뀌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책상 및 선반 어두운 한편에서 찾아냈다.

재작년 말에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웬만한 여성분들은 알만한 열정을 일으킨다는

그 M땡 다이어리.


본인 것 사는 김에 내 것도 같이 주문해 준다며

그저 그런 싸구려가 아니라며, 꽤 비싸다며

사주면 잘 쓸 자신이 있냐고 나한테 묻길래

"웅~ 열심히 써볼게.^^"라며 받아냈던

그 다이어리.


펼쳐 보았다.


비었다.

앞 쪽 몇 장 빼고는 터~엉~텅 비었다.


순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미안했고, 한심했다.

그랬다.

왜 이리 꾸준하지 못할까?

아니, 왜 이리 꾸준할까?

작심삼일이 꾸준했고,

용두사미가 꾸준했다.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노력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사랑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성공


미처 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

그랬다.

난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 같았다.


날짜만 덩그러니 적혀있는 페이지들의

공백, 공백, 공백

연예인도 아닌데 공백기가 왜 이리 기니.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써가지 못해,

남들과 발맞추어 걸어가지 못해,

뒤쳐지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종이에 기록되지 않은

노력과, 사랑과, 성공도

분명 있다.

(내 일정은 주로 스마트폰에,

나 공고 나온 남자야)



비교적 성공, 비교적 유명, 비교적 행복



남들과

비교적 적었지만,

비교적 작았지만,

비교적 느렸지만,

분명 있었다.


이제는 알겠다.

남들 다 쓰는 그럴듯한

종이 다이어리가 아니어도

그 날짜가 아니라도

칸에 맞게 꽉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다이어리가 꼭

다이어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내가

'비교적 인간'만 아니라면

"비교적 괜찮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2022년의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2021년도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목표와 일정과 일기 대신

영어단어와 에세이와 습작시를,

남들이 정한 속도 대신

나만의 속도로,

채워 나가고 있다.


긴 공백기를 가진 연예인이

늦은 나이에 컴백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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